나는 담벼락 뒤에 숨어 있었다. 누구한테 들킬세라 조심히 집 안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중이었다. 내 손에는 선물 포장지에 싸인 연필 한 다스가 들려있었다. 힐끔거리는 나를 발견한 그 녀석이 집 밖으러 나와 내게 말했다.
“우리 집에 왜 왔어? 너희 집으로 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녀석에게 주려던 생일 선물을 손에 든 채로.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고, 그 녀석은 다섯 살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같은 동네 동생이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열 가구 정도 되던 우리 마을에서는 누구 생일이면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간단히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그날도 그 동생에 집에서 동네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연필 한 다스를 포장지에 싸서 나에게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 동생에게 생일선물을 주고 오라는 미션을 주셨다.
어릴 적 나는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아이였다. 친척 분들이 집에 오시면 부끄러워서 인사를 못하고 숨었다. 누가 집에 오신다고 연락이 오면 잽싸게 집 밖으로 도망을 쳤다. 논이며 밭으로 한참을 달려가서 숨어있다가 친천분들과 마주치지 않게 조용히 집에 들어와 구석진 방으로 또 숨었다. 남자가 왜 그렇게 사나이 답지 못하냐고 어머니께 여러 번 혼이 났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 동네 동생네 집에 나를 혼자 보내신 것은 일종의 담력 테스트이고 훈련이었던 것 같다. 나는 보기 좋게 그 테스트에 떨어진 것이다. 두 살 어린 동생의 한 마디에 찍 소리도 못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엉엉 울면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울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있었다. ‘네 선물을 주러 용기 내서 왔는데 나를 문전박대하다니’라는 서운함. 두 살 어린 동생의 한마디에 뭐라고 대꾸도 하지 못하고 울면서 돌아온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아직 홀로서기의 준비가 돼있지 않은 아들의 마음을 몰라주고 무작정 부딪히게 했던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 어머니도 생각지 않게 서럽게 울어 대는 아들을 보며 많이 놀라신 듯했다. 매년 연말에나 돼야 뜯던 돼지 저금통 배를 갈라서 내 손에 동전을 한 움큼 쥐어주시며 한참 동안 나를 달래셨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내성적이고 부끄러움 타는 나의 성격은 계속되었다. 나는 자신감이 부족했었다.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나의 얼굴. 뭐 하나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나로 인해 남이 불편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는 법인데.
대학 때쯤부터였다. 나의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 성격이 바뀌었다기보다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어느 계기에선가 남들 앞에 서서 말을 하거나 나에 대한 무엇을 보여줘야 할 때 ‘나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을 떠올렸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누구한테 부끄럽지 않게 성실하고 당당하게 살아오신 당신들. 가진 것 많은 부모와 우리 부모님을 비교했을 때 우리 부모님이 부끄러운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어떤 부모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부모님은 훌륭하신 분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분들의 아들인 나는? 내가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없어도 우리 부모님의 자식으로서의 당당함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부모님의 얼굴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남들 앞에 서서 나를 보여주는 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게 되었다. 내가 가진 조금 부족한 것들조차 소중하게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남들 앞에 서서 나를 보여줘야 하는 순간에 힘을 얻어야 할 때는 부모님을 떠올린다. 당신들이 내 뒤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바로 내 앞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jtbc 드라마 미생에서도 주인공 장그래가 내 생각을 한 마디의 명대사로 잘 정리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성인이 된 지금은 직장 회식 자리와 사내 행사에서 사회도 보고, 사내 아나운서로도 활동하면서 큰 불편 없이 대중 앞에 서곤 한다. 일곱 살 때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스파르타(?) 교육의 성과가 느지막이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곱 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생일 선물을 전해주러 온 동네 형아를 문전박대한 그 동생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엄마가 너 선물 갖다 주라고 해서 왔는데 안 줘! 내가 가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