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가 알아서 하세요

by 오늘도 생각남

“나는 그 결혼 허락할 수 없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을 반대하셨었다고 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아버지가 삼대독자라는 점, 둘째, 시아버지는 안 계시고 모셔야 할 시어머니만 두 분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3대 독자셨다. 남자 형제들 한 명 없이 손이 귀한 집에서 태어나셨다. 할아버지의 첫째 부인이셨던 큰 할머니는 아기를 낳지 못하셨다. 할아버지는 둘째 부인을 맞으셨고, 아버지가 태어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실 무렵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스무 살 가장이셨다. 할아버지 부재로 스무 살 남짓에 두 어머니를 혼자 모시며 가장 역할을 하고 계시던 아버지. 그런 집에 며느리로 들어가 두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상황.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조목조목 따져가며 결의에 찬 모습으로 외할아버지를 설득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두 분이라는 게 무슨 문제예요. 한 분은 시아버지, 다른 한 분은 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모실게요”

이렇게 굳은 결심을 한 딸을 어떤 아버지가 막을 수 있을까? 나는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설득하셨다는 그 논리를 듣고 눈치를 챘다. 어머니가 아버지께 콩깍지가 씌워졌다는 것을. 그 시절에는 통상 그랬을 듯싶지만 어머니는 사진으로 아버지와 맞선을 본 상황이었다. 중매는 큰 이모부가 하셨다. 큰 이모부 말에 따르면 그동안은 어머니께 맞선 대상 남자의 사진을 갖다 주면 어머니는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드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 사진을 내밀었더니 어머니께서 하셨다는 말씀.


“형부가 알아서 하세요.”


어머니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씀하실 분이었다. 그런데 형부가 알아서 하라니. 큰 이모부가 외할아버지께 어떻게 할까냐고 여쭸더니 어머니께 설득당하신 외할아버지도 사위(큰 이모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네가 알아서 해라.”


큰 이모부는 가끔 술자리에서 그 당시를 회상하시며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니, 내 결혼이여? 내가 알아서 하게?”

“아니, 내 딸이간디 내가 알아서 해?”


큰 이모부에게 수십 번 넘게 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러브스토리.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난다. 어쩌다가 아버지 20대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제야 어머니가 큰 이모부에게 왜 알아서 하시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일흔이 가까이 되신 지금도 아버지는 준수하신 외모시지만 20대 사진은 정말 영화배우 뺨칠 정도로 말끔한 꽃미남이셨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신 어머니. 그렇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다. 아마 어머니는 큰 이모부가 내민 아버지의 사진 속에서 착하고 성실한 아버지의 마음을 봤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라 믿는다.(어머니 맞지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큰 이모부가 내민 사진에 어머니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그렇다면 나도 어머니, 아버지와 부모-자식의 인연으로 만나지 못했을 텐데.


문득 이선희의 ‘인연’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난다.


‘인연이라고 하죠. 포기할 수가 없죠(아버지 사진)’


나도 이렇게 흥얼거려본다.


‘내 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날

(아버지, 어머니와 부모-자식의 인연으로 만나서)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이전 13화아버지가 보내주신 37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