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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Jul 27. 2021

나에게 '커닝'을 허하라!

때는 중학교 시절 어느 시험시간이었다. 문제를 다 풀었는데 주관식 답 하나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전날 외웠던 내용이었는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교과서의 그 내용이 있던 위치는 기억이 났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뇌를 '톡' 하고 건드리면 답이 금방이라도 '툭' 하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틀리는 건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찔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커닝'을 하기로 결심했다. 뒤에 앉은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리는 척하며 지우개에 그 문제의 답을 물었다. 친구가 지우개에 답을 적어주었다. 시험이 끝난 후, 그 친구의 한 마디에 나는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다.      


“OO아, 너 커닝한 거 감독하는 선생님이 봐준 거야. 네가 나한테 지우개 빌릴 때 네 책상 위에 네 지우개 있는 거 보시면서 선생님이  웃으시는 것 봤어.”

     

그렇다. 나의 커닝은 너무 허술했다. 뻔히 내 지우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뒷사람과 지우개를 몇 번이나 주고받는 모습이라니. 시험 감독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다. 우리 중학교로 전근 오신지 1년이 채 안되셨는데 영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나를 좋게 보신 듯했다. 선생님의 신뢰를 나는 그렇게 무너뜨렸던 것이다. 그 후로는 나는 ‘커닝’을 해본 기억이 없다.      


연일 BTS 노래가 빌보드 ‘핫 100’ 정상을 차지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주요 내용은 BTS와 BTS가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BTS 깬 BTS... 신곡 ‘퍼미션 투 댄스’ 빌보드 1위”(한국경제, 21년 7월 20일)       


“또 BTS가 BTS 이겼다… ‘버터’로 빌보드 1위 재탈환”(조선일보, 21년 7월 27일)     


내용은 이랬다. BTS가 '버터'란 노래로 빌보드 ‘핫 100’에서 7주간 1위를 차지하며 팝 역사의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신곡인 ‘퍼미션 투 댄스’가 '버터'를 밀어내고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언론들은 ‘BTS만이 BTS를 넘어설 수 있다’는 칭찬을 쏟아냈다. BTS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1위에서 밀려났던 ‘버터’로 일주일 만에 다시 빌보드 1위를 탈환했다.


BTS의 셀프 대결 기사를 보는 데 글쓰기 대가 허밍웨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글 쓰는 것이 너무 힘들 때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쓴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서 글쓰기가 항상 힘들었으며, 종종 거의 불가능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곤 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BTS도 '커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 ‘퍼미션 투 댄스’라는 신곡을 준비하면서 ‘버터’라는 노래를 준비하던 그 치열함과 그때 흘렸던 땀방울들을 모방했을 것이라는. 지난 노력들을 뛰어넘어야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여 더 나은 노래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자신이 자신을 '커닝'하는 사례는 많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잘 작성된 보고서 샘플을 찾는 것이다. 논리 전개가 비슷한 샘플을 찾아서 필요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여 사용하면 된다. 이미지나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느낌이 비슷한 샘플 포맷을 찾으면 콘텐츠 제작의 반은 성공이다. 기존 포맷을 편집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담으면 훌륭한 콘텐츠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나만의 보고서와 나만의 콘텐츠를 제작한 후에는 그것들이 나의 콘셉트가 들어간 나만의 '커닝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최고의 레퍼런스(샘플)는 ‘자기 자신’이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치열하게 준비하고 실행하고 부딪혔던 그 순간순간들이 훌륭한 '커닝 페이퍼'가 되는 것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경험과 기록은 그다음 스텝을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뒷사람, 옆사람을 커닝하기 위한 '지우개'를 내려놓자. 내가 '모방'하고 '커닝'해야 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온 '과거의 나'다. 또한, 우리가 넘어서야 할 사람도 바로 최선을 다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다.


마음껏 커닝을 하자. 타인이 아닌 바로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커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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