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것들의 반란

by 오늘도 생각남

무용(無用): useless , 쓸모없음


이상하게 무용(無用)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색색의 점토로 작은 음식모형을 만드는 일이 그랬고, 좌우대칭이 맞지 않는 순정만화 주인공 얼굴을 그리는 일들이 그랬다. 나만 유난한 것처럼 설명했지만 누구나 유년시절은 무용한 것으로 채워진다. 비석을 던져서 상대 아이의 비석을 맞추거나 고무줄뛰기에 발이 걸리는 일이 무슨 대단한 목적이 있었으랴. 오징어달구지(우리동네에서는 오징어게임이 아닌 '오징어달구지'라 불렸다)를 적진에 침투하는 장수의 마음으로 임하는 것처럼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놀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무용한 일을 하며 자란 아이가 학령기를 지나면서 놀이을 진짜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세상이 정하는 점수에 부합하기위한 국어,수학같은 유용(有用)한 학문으로 채우면서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몸은 큰 어른이 되었지만 내 안에 무용한 것에 대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직장인이란 이름으로 사회의 유용한 일을 처리하면서도 수시로 다양한 무용을 탐했다. 뜬끔없이 그림을 배우기도 했고, '먼지 알레르기'가 있지만 털실의 먼지를 참아가면서 사는 것보다 더 비싼 털장갑 따위를 짜기도 했다. 일명, '쓸떼없는 짓'을 유용한 하루에 끼워넣으면 승모근은 피로해지고 순간이동처럼 시계가 지나갔지만 묘하게 기분은 좋았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거나(물론, 잠을 자기도 했다) 뭔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했다. 가끔 남들이 보기에 쓸떼없는 일들에 깊이 빠져드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할때도 있었는데 한 책에서 답을 찾았다. 이시형 박사가 쓴 '세로토닌하라'란 책을 보면 세로토닌은 가벼운 흥분과 설레임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세로토닌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행복을 관장하는 호르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언가 몰입할때 나오는데 나는 "쓸떼없는 짓'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때 경험했던 것이다.


현재는 당장에 필요는 없지만, 재밌는 것, 살짝 어려움이 있지만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


나에게 'N잡의 시작'이 그랬다.


명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 관한 불안한 마음은 누구나 한켠에 품고 산다.꼭 내 직업이 없어진다거나 현실을 천지개벽으로 바꾸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그저 조금은 불안한 상태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살던 대로 사는 와중에 '디지털노마드'란 단어를 만나고 우리반에 전학온 외국인 친구에게 호감과 관심을 가지듯 빠져들었다.


회사일은 익숙했고, 더이상 가벼운 흥분과 설레임을 내게 가져다주지않았다. 반면, 모니터속 세상은 고구마줄기에 튼실한 고구마들이 딸려나오듯 계속 새로운 것이 딸려나왔다. 사진을 보정하고 '썸네일'이라 불리우는 디자이너가 만든것 같은 이미지를 뚝딱 만들어내는 것들은 사실 내게 무용한 일이였다. 쓴적도 쓸 일도 없는 일들이지만 단순한 지적호기심의 충족으로 재미가 있었다.


여기에 '미래를 대비하는'이라는 타이틀이 붙자, 프로게이머를 준비하는 중3아들의 마음처럼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게 당당해졌다. 독립열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도 재미없는 일은 하지못한다.


"무용(無用)한 것에서 찾은 유용(有用)함!"그게 N잡의 바다로 향하는 미풍이였는지, 그때 나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