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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시간도 내 인생이니까

브런치 '나도 작가다' 공모전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by 오늘도 생각남

안절부절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집중이 안될 때가 있다. 특히, 특별한 이벤트 D-day 직전이 그렇다. 초등학교 때는 소풍이 가장 큰 이벤트 D-day였다. 뭐가 그리 기대가 됐는지 소풍 전날에는 다음날이 빨리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날은 시간도 가지 않았다. 기다림을 잊어버리기 위해 저녁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가 어머니께 혼났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시간 이동이라도 해서 소풍 전날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오늘 내 심정이 그렇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심장은 벌렁벌렁하다.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지. 브런치와 EBS가 공동으로 기획 한 '나는 작가다 - 나를 나답게 하는 것' 공모전에 얼마 전 글을 보냈다. 오늘이 결과 발표날이다. 아직 실력은 부족하나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내게 이 공모전은 아주 특별했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란 화두는 스무 살부터 20년이란 세월 동안 생각해왔던 주제였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나름 고민도 많이 해왔고 개똥철학이지만 나름의 생각도 정리돼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로 글을 써서 내 꿈인 작가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매력적인 조합이었다. 시험공부는 충분히 못했지만 결과는 잘 나오기를 바라는 학생의 심정으로 공모전 결과가 기다려졌다. 결과 발표일이 오늘(금)인데도 어제부터(목) 메일을 시간 단위로 확인했다. 내가 작성한 메일 주소가 맞는지도 몇 번을 확인했다. '시간도 안 가는데 영화나 보며 시간을 때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단어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때우다?


'내 시간이 구멍 났나?', '구멍도 안 난 시간을 왜 나는 아무렇게나 때우려고 하고 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군대 시절 달력에 X 표시를 하던 병장들이 생각났다. 대한민국 모든 병장들이 공통 놀이인 달력에 X 표시 하기. 전역 날짜를 세는 병장들의 유일한 낙. 달력에 X 표시하기도 귀찮은 병장들은 인간 달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신병들에게 자기 전역 날짜를 외우게 하고 매일 똑같은 질문을 한다.

야, 신병 며칠 남았냐?


그럼 신병들은 신속하게 관등성명과 함께 남은 날짜를 계산해서 복창한다. 남은 날짜와 관계없이 병장들은 매일 똑같은 말을 한다. '시간 진짜 안 가네.'


대부분의 병장들은 군대생활을 '때워야 하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시간이동이 가능하다면 그 시간을 점프하고 싶어 한다. 노래방에서 간주 점프하듯이.


그들에게는 전역만이 궁극의 목표다. 전역을 한다고 바깥세상이 꽃길처럼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었던 사람은 복학생으로, 직장인이었던 사람은 예비역 직장인으로 다시 돌아갈 뿐이다. 군대 가기 전과 달라진 것은 국가 인증 자격증인 전역증을 갖게 됐다는 것. 물론 그 자격증은 취업할 때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냥 초등학교 졸업할 때 받은 개근상 정도의 의미다. 그들은 군대라는 곳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 학교와 직장으로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은 아니다.


병장 선임들을 보면서 군대도 본인 삶의 일부분인데 왜 그 시간을 부정하려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본인들의 시간이 구멍 나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아무렇게나 때우려고만 하는지. 땜장이도 아니면서. 자신이 때운 그 시간들이 넓게 보면 자신 삶에서 또 다른 구멍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인데.


병장 선임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그때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모전 결과를 기다리는 오늘도
소중한 내 하루인데
나는 왜 이 시간을 때워 구멍 내려했을까?


내가 공모전에 합격한다면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만약 불합격한다면 다음 기회를 노리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반성의 글쓰기를 했을 것이다. 합격이던 불합격이던 할 일은 같았는데 나는 왜 길을 잃고 시간을 때우려고만 했는지?


대기시간도 자신 삶의 중요한 부분임을 깨우치고 철학자 스피노자는 일찍이 그런 말을 했었나 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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