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브런치 작가 시험(?)에 합격했다. 너무 기쁜 마음에 회사 동기들에게 자랑을 했다. 동기 카톡방에 브런치 작가 시험에 통과한 글을 올렸다.
니 글의 장점은 한 번은 생각할 만한 꺼리를 주는 거고 단점은 재미가 없다는 거야~^^
동기 H가 말했다. 평소 잘 웃고 다니며 허술해보지만 예리한 친구였다. 뜨끔 했다. 꼭꼭 숨겨둔 비밀을 들킨 것 같았다.
나에게 진지함이란?
나는 뼛속까지 '진지남'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노잼'이었다. 내 머릿속엔 항상 '의미'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 삶의 의미는 뭘까?', '저 일이 가지는 의미는 뭘까?'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삶을 탐구하듯 살았다. 무슨 도인처럼. '나도 좀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스무 살이 돼서는 '노잼'을 탈출하기 위해서 유머책도 여러 권 읽었다. 몇 가지 잔 기술은 배웠지만 책이 사람을 바꾸진 못했다.
글은 글쓴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내 삶이 그렇듯 나는 글 속에서도 항상 '의미와 교훈'을 찾고있었다. 책을 읽어도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뭘까?', 영화를 봐도 '이 영화가 말하려는 가치는 뭘까?'를 생각했다. 나를 통과하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내려 하지 않았다. 월드컵에 나가 한 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골키퍼의 마음처럼. 내 삶에 '멍 때리기'는 없었다. 내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고 바빴다.
사실 나도 가끔은 이런 내 자신에 지치기도 했다. 쉽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깨달았다. '진지'는 내 성격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실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서도 동기 H의 말처럼 누군가 그 지점을 건드릴 땐 움찔했다. 방심하는 사이에 갑자기 옆구리를 찔린 사람처럼.
재미란 무엇인가?
참 우습게도 동기 H의 말에 한편으로는 움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재미란 무엇일까?', '재미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를 분석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진지함은 못 말린다.
'재미'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웃음'이다. 웃음은 크게 소리 내어 웃는 대소(大笑)와 소리 없이 웃는 미소(微笑)로 나눌 수 있다. 내 글은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저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거나, 글을 읽고 '풋'하는 정도면 그만이다.
재미는 '희로애락(熙怒愛樂)'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쁨을 주는 글 : 아마 정보성 있는 글이 아닐 성싶다. 돈 되는 정보. 읽어서 돈이 되는 글이라면 기쁘지 않겠는가? 누가 아파트 값이 올라가는 소식을 미리 전해준다면, 또는 코로나 시대 재테크 방법을 알려준다면 뭔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금전, 재테크 등 경제적으로 이득을 주는 글의 영역. 아직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영역은 아니다. 실 생활과 밀접한 실질적 영역인 만큼 피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화를 부르는 글 : 논쟁을 부르는 글일 것이다. 정치, 종교, 성별, 지역 등 호불호가 분명하고 니 편 내 편이 나눠지는 영역. 노이즈 마케팅처럼 논란을 일으키면 한쪽의 지지를 분명히 받게 되는 글의 영역. 평생을 가도 쓰고 싶지 않은 영역이다.
사랑스러운 글 : 감동을 주기도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일 것 같다. 감동에는 슬픔이나 안타까움도 있을 것이고 생각만으로도 느껴지는 따스함도 있을 것이다. 공감은 내가 겪고 있는 소소한 일상에서의 작은 깨달음이나 푸념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길 수 있을 듯하다. 굳이 나누자면 현재 내 글이 속한 영역이다.
즐거움을 주는 글 : 동기 H가 말한 재미나 큰 웃음은 바로 이 영역에서 나올 듯하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 내 삶이 즐거움을 추구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내 마음을 다스려서 만족을 찾으려 했고 재미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것이 내 글이 재미나 즐거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는 하나의 날개로 날 수 없다.
글을 쓰다 보니 느끼게 된다. 나는 편식하 듯 한쪽에 치우친 삶을 살아왔음을. 고행하는 도인처럼 '의미'라는 도를 깨치려는 수행자의 삶을 살아왔음을.
어쩌면 글쓰기는 나의 잃어버렸던 반쪽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41년 동안을 수행자로 살아온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사람은 안 바뀐다'는 사실을. 하지만 노력하고 노력하면 '재미있는 사람은 되지 못해도 재미있는 글은 조금씩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글 속에서는 내가 감독이고, 내가 작가고, 내가 배우니까
지나가는 한 마디에 또 의미 찾느라 늦은 밤까지 고생했으니 오늘 밤에는 멍 때리며 유튜브 짤이나 좀 보고 자야겠다. 그리고 내 자신한테 이렇게 설명해줘야겠다. '멍하니 유튜브를 보는 건 뇌를 쉬어주는 의미도 있고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