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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왜 이래?

오늘도 흔들리는 마흔이 마흔에게

by 오늘도 생각남
마흔은 '불혹'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마흔이 돼도 이렇게 갈팡질팡하냐?


' 불혹(不惑) :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이 흐리는 일이 없음'


직장생활이 잘 안 맞는다며 마흔이 된 친구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흔이 됐지만 세상살이는 여전히 쉽지 않았고 서툰 것 투성이었다. 회사생활도 그랬다. 직장생활 10년 차인데도 윗사람에게 보고를 하면 내 보고서엔 빨간 줄이 죽죽 그어졌고 잘못한 학생처럼 혼나는 일도 여전히 계속됐다.


돌아보면 내 삶은 흔들림 투성이었다.


10대 때 제일 큰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였다. '애 어른'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조숙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때 '나는 왜 태어났지?', '세상에 태어나 내가 할 일은 뭘까?' 하는 것이 가장 궁금했다.


20대 시절 고민은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수능만 생각하고 대학이라는 목표에만 도달하면 됐었다. 막상 대학에 가보니 그 작은 사회 속에는 온갖 군상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서로 다른 생각, 성향, 이상. 많은 경험을 통해서 10대 시절의 고민이었던 '자아발견'의 숙제를 풀고 싶었던 나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러나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나'라는 벽과 '관계'라는 화두에 부딪혔다. 또,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왜 그리 나를 싫어하던지. 차이기도 많이 차였다. 축구공처럼.


30대가 되니 나는 누군가의 남편, 아빠 그리고 한 회사의 직원이 돼 있었다. 결혼도, 육아도, 직장생활도 모두 처음이었다. 맡은 바 일은 덮어놓고 열심히 해야 하는 고지식한 성격 탓에 직장과 가정의 조화를 이루는 일은 쉽지 않았다. 회사의 요구에 부응하며 가정에도 좋은 가장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두 가지 역할을 다 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무리한 탓에 건강에 탈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40대... 8살 쌍둥이를 키우면서도 매일매일 흔들린다.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아이들의 부정적인 습관이 강화되거나 아이들의 잘못에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했을 때 나의 부족함에 그리고 안타까움에 흔들리다 못해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게 일상이었던 어느 날 한 줄기 빛과 같은 문장을 만났다.

오락가락하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지
궤적을 어떻게 그려볼까.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인 것 같다.


* 은유, 쓰기의 말들 p167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최근 글쓰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 매일 '막 쓰기'로 글을 한 편씩 쓰고 있었는데 내가 왜 매일 쓰고 있는지를 깨닫게 됐다.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단단해져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오늘도 쓰고 있는 거였구나'

흔들림, 떨림을 지나 울림으로


흔들임의 시작은 불안이었다. 불안을 받아들이고 계속 나아가면 흔들림은 떨림으로 바뀌게 된다. 떨림에는 설렘이 있다. 그 설렘으로 멈추지 않는다면 울림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울림은 크면 클 수도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흔들린다. 하지만 오늘도 쓰고 있기에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쉰이 돼도 예순이 돼도 나는 계속 흔들릴 것 같다. 그 흔들림 속에서 작은 울림들이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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