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직업이 뭐야?'
'응,엄마는....... 엄마야.'
'그게 뭐가 직업이야, 엄마는 그냥 되는거지.'
큰아이 네살 무렵 어린이집에서 집에 오자마자 물어보는 말이었다. 갑자기 이런게 왜 궁금했을까 생각했다. 어린이집에서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리저리 생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질문을 했던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했다. 두어번 심호흡을 하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직업이 궁금했어? 어떤 이유가 있었어?'
물어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친구네 엄마들은 예쁜 구두신고 화장하고 머리도 예쁘게 기르고 오는데,
엄마는 맨날 안예쁘게 하고 오니까 그렇지, 뚱뚱하고..... 엄마 말고 아빠가 오면 안돼?'
아이의 눈에 자기의 엄마는 그냥 그렇게 보였나보다. 나의 어린시절 늘 혼자 유치원을 왔다갔다 했던 기억이 있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 내 아이에게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엄마가 늘 맞이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랄 때까지는 엄마가 곁에서 있어주면서 하원도 해주고, 간식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예쁜 엄마가 데리러 오는 것이 부러웠고, 아이는 이런 나의 마음은 전혀 모르고 예쁘지 않은 엄마가 데리러 오는 것이 챙피했던 것이다.
날씬한 몸에 치마를 입고 화장도 하고 구불구불 파마한 친구 '엄마도 왕년에는 잘나갔어. 강남에서 회사다니고 돈도 많이 벌고 엄마 키도 큰데 날씬했다고'라고 이야기하려다 아이와 하원하는 길 유리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둘째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입고있는 임부복, 질끈 묶은 머리, 푸석한 얼굴, 펑퍼짐 하다못해 거대한 몸. 아기띠를 하고 어께는 솟아있고 세상 모든 힘듬이 느껴지는 표정, 결혼 전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봐도 너네 반 친구의 엄마와는 많은 차이가 있네, 그렇네.' 한없이 마음이 작아졌다.
19개월 터울의 삼남매를 낳고 나는 점점 마음이 작아지고 사회와는 멀어지고 얼굴에 빛도 잃어 갔다.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얻어진 것은 깊은 우울감과 104KG의 거대한 몸과 만성피로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있으니 그것은 책이었다. 책은 일주일에 한두권씩은 무조건 읽었다. 육아를 책으로 배우기도 했고 아이들 자고난 이후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어서 책을 봤었다. 육아서에보면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합니다.'
'엄마의 자존감이 높아야 아이의 자존감도 올라갑니다.'
종종 읽는 글이었지만, 이 날은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나는 행복한 엄마인가?'
'나의 자존감은 어디에 있나?' 이 두가지 질문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하는데 그런 것 조차 대답할 수 없었다. 거울을 제대로 본지도 오래되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나 같이 느껴지지 않고 낯설게만 보였으며, 눈물이 흘러서 1초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또 다른 책을 읽기도 하고,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었는데, 과연 잘 키우고 있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아니, 그것보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를 돌아보게되었다. 아이에게는 행복하고 즐겁게 살라고 하면서 엄마는 그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본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무엇부터 해야할까 하나씩 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제 안 사실이지만 행복과 자존감은 다른 누군가가 찾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밖에서 찾으려니 전혀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삶의 목표와 꿈같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다보면 그런것도 생기지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고 마음먹었고, 그 날부터 나와 나의 직업을 찾는 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