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를 키우던 때였다.
문화센터에 아이를 데려가는 게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왕왕 초보엄마 시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집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을 만났다. 아이의 발달검사를 무료로 해준다나 뭐라나. 수업 땡 하면 바로 집에 가느라 다른 엄마들이랑 말도 못 섞던 난데(믿기지 않지만 낯을 좀 가린다..ㅋ). '아이'라는 말에 멈춰섰던 것이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데 책이 필요한가요?"
이정도로 육아에 대해선 완전 몰랐던 나다. 하긴. 누워만 있던 녀석이 엎드리고, 기고, 걷고, 말하고 하는 과정을 보면 문화센터를 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다양한 어휘를 아이에게 들려주면 좋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내가 쓰는 어휘가 몇 개나 되겠는가. 기껏해야 "일어났어?", "씻어", "밥먹어" 이런 일상적인 언어가 다일텐데. 어쨌든 귀신에 홀린 듯 몇백만원 어치의 전집을 구매했다. 12개월 할부로
문화센터에 다니는 비용으로 아이의 미래를 위해 책을 산거다. 어릴때부터 책과 친해지면 좋지 뭘. 하며 자기합리화 하면서 말이다.
집에 책이 오기 시작하면서 책장이 생겼다. 30권이던 책이 60권이 되고, 100권을 넘어가자 남편이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쟤들이 뭐 알어? 얼마 주고 샀어"
"그럼~ 말 못했던 애가 맘마.하다가 엄마도 하고 아빠도 하고 그러잖아. 진열상품이라 싸게 샀어. 원 플러스 원 해준대서~ 다양한 어휘를 들려주면 좋대"
뻥을 쳤다. 그러자 충격적인 답이 돌아왔다.
"딸들은 시집가면 개털이여~"
띠로리...
딸을 키우고 있는 내가, 딸인 내가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매우 빡치는(하지만 정작 본인은 기억못 함) 말이지만 내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준 고마운(?) 말이기도 하다.
남편만 믿고 살아선 안되겠구나. 내 새끼를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아빠가 안된다고 하면 엄마가라도 해줄게!'
그렇게 나의 N잡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