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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똥이다.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힘, 글쓰기

by 오늘도 생각남

이제부터 똥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똥이 더러운가? 그렇다면 이 글에서는 '똥'을 잠시 ‘뚱’이라 부르겠다.


세상에 뚱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생각해보라. 며칠 동안 화장실에서 뚱을 만나지 못한다면 나의 상태가 어떨지? 아마 얼굴빛은 누렇고, 인상은 하루 종일 찌푸려져 있을 것이다. 내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 아주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 뚱은 나오면 나오는 대로 내게 아픔을 주고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짜증과 고통을 줄 것이다.


'뚱의 사회학'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 김훈은 과거 농경시대에는 뚱이 대지의 거름으로 사용되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뚱에서 대지로, 대지에서 밥으로 연결되는 순환의 통로가 차단되었다’고 말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구 인류가 하루 동안 쏟아내는 뚱의 양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양의 뚱은 지금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리고 국가가 그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뚱을 처리하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분뇨차와 거기에 타고 계신 고마운 아저씨들을.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세상은 뚱 천지가 됐을 것이다. 출근하려고 문 앞을 나섰는데 발 디딜 곳 없이 뚱들이 널려있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만큼 뚱을 처리하는 일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러한 뚱은 ‘글쓰기’와도 닮은 점이 많다.

첫째, 뚱과 글 모두 나로부터 나왔다. 둘 다 내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거늘 냄새 좀 난다고 어찌 한 놈만 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밉던 곱던 뚱도 내 배 아파서 나온 내 새끼고, 글도 내 머리 아파서 나온 내 자식이다. 화장실에서 큰 일을 치르고 나면 뚱 보기 싫다고 뚱은 보지도 않고 변기 레버를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내 새끼 한번쯤은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둘째,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리도 울었을까? 하나의 뚱이, 한 편의 글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나오지 않는 뚱과 화장실에서 씨름을 해본 사람은 안다. 화장실은 조용하나 내 뱃속에서는 수없이 천둥이 쳐 댄다. 우르릉 쾅! 쾅! 쾅! 뚱이에게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응원하기도 한다. ‘끄~~~ 응', '끙, 끙, 끙'.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있다는 진리를 뚱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글쓰기도 만만치 않다. 뭔가 쓰고는 싶은데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뭔가 생각이 났는데 써보니 중언부언하고 있을 때, 머릿속에는 분명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끄집어 내지지 않을 때, 그때 머리엔 쥐가 나고 짜증은 하늘은 찌른다.

셋째, 뚱과 글이 깔끔하게 잘 나왔을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뚱이 잘 나온 아침을 상상해보라. 한 방에 '퐝'. 깔끔하게 '딱'. 그땐 화장지도 몇 장 필요 없다. 사과 껍질을 한 번도 끊이지 않고 깔끔하게 깎아 냈을 때와 같은 뿌듯함. 변비에 걸려 본 사람들은 안다. “오늘 나 성공했어”라고 외치는 그 상쾌함을.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내 머릿속을 사진을 찍은 듯 글로 잘 표현했을 때 느껴지는 희열감.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당당히 보여준 것 같은 성취감.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맛보고 싶은 감정들이다.

넷째, 뚱과 글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면 매일 아침 신하들은 어린 황제의 뚱을 살펴보고 이렇게 외친다. “황금색이요~” 어렸을 때는 그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건강한 사람은 뚱도 건강하다는 사실을. 우리 선조들도 임금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매일 신하들이 임금 뚱의 색깔, 모양 그리고 맛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글을 통해서도 그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 뚱에서만 향기가 나고 맛이 나는 것은 아니다. 글에도 맛과 향기가 있다. 글쓰기는 단순히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나열한 것이 아니다. 글에는 그 사람의 치열한 고민과 땀방울이 담겨있다. 그래서 어떤 글은 짠맛이 나기도 하고 어떤 글은 달콤하기도 하다. 한 문장의 향기가 하루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 때론 한 평생을 살아가는 힘을 주기도 한다.

다섯째, 뚱과 글은 한 사람에게서 나왔지만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뚱을 보라. 본인이 쏴 질렀지만 뒤처리는 사회와 국가가 하고 있지 않은가? 글도 마찬가지다. 내 일기장 속 글은 나만의 것이지만 글이 일기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글은 ‘공공재’가 된다. 글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단 댓글이 보는 사람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다. 결국에는 삶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죽을 만큼 힘이 드는 순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글도 있다.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글은 읽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

나의 뚱이 육체적인 나라면 나의 글은 정신적인 나다. 뚱은 밥으로부터 글은 경험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이다. 내 뚱은 화장실에 있지만 내 글은 일기장에 있다. 내가 ‘진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이 되어서였다. 그전의 일기는 숙제였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생각해보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뚱이 있을까? 배가 아프지도 않은데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내는 뚱.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스무 살 이전 내 일기가 그랬다.

1999년. 나는 스무 살이었고 재수생이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계신 막내 고모님 댁에서 재수학원을 다녔다. 고모님은 고모부를 일찍 떠나보내고 두 아들을 혼자서 키우고 계셨다. 사촌형님들. 고모님은 삼겹살집을 운영하시다 IMF로 장사가 잘 안돼서 분식집을 하고 계신 상황이었다. 큰 형님은 직장인이었고, 나름 공부를 잘했던 작은 형님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편입을 해서 다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고모님은 힘든 상황이었다. 장사는 잘 안 됐었고, 일찍 취업해서 경제적으로 엄마를 도와야 하는 둘째 아들은 한번 더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고향집 동생(우리 아빠)의 부탁이라 조카를 맡아두기는 했지만 재수생 조카에게 이른 아침마다 두 개씩 도시락을 싸서 학원에 챙겨 보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죄인이었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 서울까지 재수학원을 보내 주신 부모님께 죄송했고, 생업에 두 아들에 조카까지 챙겨야 하는 고모님께도 항상 죄송했다. 재수생이라는 불안한 신분과 막연한 미래, 서울이라는 낯선 환경, 노력만큼 오르지 않는 성적... 두 겹 세 겹의 죄책감과 누적되는 피로에 나는 지쳐갔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진짜 일기’를 쓰기 시작한 시점이. 누구에게도 내비칠 수 없는 힘든 마음을 일기장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때로는 나 자신을 다독였고, 때로는 질책했다. 그 공간에서 나는 솔직했다. 아무 숨김없이 온전히 나를 드러냈다. 내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물었고 스스로 답했다.

재수시절 처음 고향집에 다녀와서(1999년 4월 4일)

그때부터 시작한 진짜 글쓰기는 지금까지도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힘이다. 지금은 일기장뿐만 아니라 핸드폰 메모장에도 수시로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 내용은 힘든 일상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일상에 대한 단상,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 범위가 다양해졌다.


어렸을 적 대화 도중에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 니 팔뚝 굵다”, “그래 니 뚱 굵다” 이 말은 상대방의 말이 맞는 상황에서 더 이상 반박할 논리는 없지만 패배를 인정하기 싫을 때 던지는 하얀 손수건(기권)과 같다. 이제껏 나는 일기장과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쓰며 나를 만들어 왔다. 앞으로는 그 글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다. 스무 살 재수 시절의 고뇌부터 현재 쌍둥이 육아를 하며 알게 된 작은 깨달음까지.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들을 글쓰기로 공유하고 싶다. 그것이 그동안 나만의 공간에서 글을 써오며 갖게 된 목표이고, 지금의 나 다움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다.


“그래 니 뚱 굵다”, “그래 니 글 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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