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지마오
갈지마오란?
'갈지마오'라는 뜻을 아는가? 경상도 사투리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 등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보이는 갈지마오. 난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수많은 갈지마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얼마나 다양하고 황당한 형태의 갈지마오가 많았으면 소설의 소재까지 되었겠는가? 공동주택이라는 이름 하에 살면서 공동체 의식이 현저히 결여된 사람. 이런 갈지마오가 전체의 피로도를 높인다.
갈지마오는 큰 문제
아파트 회장에 당선되자마자, 기존 동대표과 관리소장 그리고 관리 업체의 유착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꽤나 스트레스받는 처리 과정이었지만 입주민들의 도움으로 썩은 부분을 깔끔하게 도려낼 수 있었다. 그렇게 아파트가 정상화될 거란 기대를 가질 즈음, 아파트 유착 비리 문제만큼 오래 묵혀둔 문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무려 8년간 아파트 중앙 도로변에 폐차 수준의 차를 한자리에 주차해 두고 자신의 사업 광고판으로 쓰는 갈지마오였다.
'내 차에 내가 광고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예전의 아파트에는 자기 집 베란다에 '보여주는 집', '공부방'같은 현수막을 걸고 광고를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그런 현수막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다 불법 광고화되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베란다마다 광고 현수막이 걸려있으면 아파트 전체의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요즘은 대부분의 아파트 관리 규약에 개인 광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에 광고를 하려면 관리소의 승인을 받아 비용을 지불하고 지정된 장소에 정해진 기간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갈지마오는 진정한 갈지마오라 무려 8년 동안 이 사건을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타이어에 바람까지 빠져있고 여기저기 녹까지 생긴 이런 승합차를 아파트 가장 중앙 대로변에 8년 동안 알박기를 해놓고 자신의 업체 광고 현수막을 걸어 광고판으로 사용하고 있는 입주민. 아파트 관리 규약을 근거로 차량을 이동시키거나 현수막을 떼어달라고 정중히 요청하자, 고함에 욕설을 내뱉으며 멱살까지 잡는 인간. 한마디로 말이 안 통하는 전형적인 갈지마오였다.
구청에 신고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 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분쟁이나 문제는 아파트 관리 규약에 의거해 '원만하게, 알아서' 처리하도록 권고하는 게 대부분이다. 매뉴얼대로 움직여야 하는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나 사유지이고 사유 재산이기에 공적 효력이 미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왜 국가의 관심이 이토록 무관심한 것인지.
어쨌든, '우리가 알아서'처리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 차를 손대지 못했는데 '네까짓 게 해보려면 해봐라.'라며 배 째라고 나오는 이 갈지마오의 배를 나는 진짜 째기로 결심했다. 자기가 째라고 했으니까.
배째라면 배를 째야하는 갈지마오
내 전략은 바로 통했다. 난 갈지마오가 점령하고 있는 자리를 '장애인 주차 구역'으로 변경했다. 물론 행정적 과정을 모두 정확히 거쳐서. 사실 이 자리가 장애인 주차 구역으로 더 좋은 자리라 장애인 협회의 동의를 받아 변경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물론 좀 더 외진 곳에 있는 장애인 주차 구역은 일반 차량 주차 구역으로 변경하여 맞교환을 했기에 입주민들의 반발도 없었다.
"계속 주차해 두세요. 1시간마다 과태료 신고해 드릴 테니."
갈지마오는 이 시동도 안 걸리는 폐차를 이동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견인차까지 불러야 했다. 차량을 옮기며 나와 동대표들에게 어찌나 저주와 욕설을 퍼붓던지. 자신이 지금까지 공동체의 규약을 어기며 입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진 8년이란 시간은 생각하지도,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런 뻔뻔한 모습을 보여 이동한 주차 자리도 장애인 주차 구역으로 변경해 버릴까 했지만 사이즈가 작아 일단 참았다.
인정하는 게 패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인정하고 사과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을 끝까지 부정하고 은폐하고 왜곡하려다 오히려 문제가 커지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이건 교육의 문제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라 믿게 만드는 가르침의 문제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토론을 준비할 때 어른들은 '이기라.'고 가르친다. 내 주장을 끝까지 견지해 상대방이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들면 승리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토론은 말싸움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교환하며 더 좋은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임에도 이기라고 한다. 이기기 위해 상대방의 말은 무조건 반대하고 내 의견은 우기고 욱여넣는다. 그런 가르침이 '갈지마오'같은 괴물과 '어쩔티비' 같은 태도를 만들었다.
이제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가르칠 때이다. 더 나아가 반성까지 할 수 있다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을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이 되어간다는 증명이다.
제가 경험한 젊은 아파트 회장의 신세계를 통해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일어난 경험,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소설로 정성껏 빚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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