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한테 책 달라는 말을 왜 이토록 쉽게 할까?

참을 수 없는 무례함

by 오서

내가 본격적으로 작가가 된 계기는 처음 쓴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가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에 선정되며 출판 계약으로 이어지면서부터이다.


처음 써 본 소설이기에 이런 큰 공모전에서 최종심까지 오를 거라는 기대도 없었고 출판사에서 출판해 준다고만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글을 쓰면서 '내가 쓴 글이 과연 책으로 나올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의구심이 반복된다. 기약 없고 담보되지 않은 출판이라는 희망 고문 속에서 내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 글을 쓴다.



요즘 자비 출판이 워낙 많아져 출판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돈만 있으면 책을 내고 작가가 되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출판사의 픽을 받아 출판사의 투자로 책이 나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독서 인구는 멸종 위기에 처해가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책은 많아지고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현저히 많은 도서 시장에서 수익이 보장되지 않은 작가의 책을 출판해 주는 간 큰 출판사는 거의 없다.


나 역시 많은 출판사에 투고를 해 보았고 또 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해봤다.

그런 우여곡절의 시간을 거쳐 출판사와 계약이 되어 나오게 되는 것이 책 한 권이다.


지금은 이미 여러 편이 출판 계약이 돼 있는 상태라 '이게 책이 안되면 어쩌지?'라는 불안은 사라진 상태로 글을 쓴다.


다행히 첫 소설이 잘 된 편이라 후속작 계약이 대형 출판사랑 이루어지면서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가 세상에 나왔다.

두 번째 소설을 출판하면서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이상하게도 책 달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책 한 권 줘 봐."

첫 소설을 냈을 때는 주고 싶어도 책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또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왜 책이 없냐? 집에 많잖아."


사람들은 작가가 책을 쌓아놓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사실 작가에게 주어지는 증정본은 10권에 불과하다.


자비 출판이야 본인이 찍어내고 싶은 만큼 찍어내 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만 계약 출판은 아니다. 계약서에 증정본 숫자가 명시돼 있다. 10권만 주어지는 증정본을 책 달라고 징징거리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작가는 없다.


이건 마치 화가에게 그림을 그냥 달라는 말과 같고 음악가에게 작곡한 곡을 그냥 달라는 것과 같다. 그림이나 곡은 함부로 그냥 달라는 말을 못 하면서 왜 책은 그냥 달라는 말을 쉽게 할까?


이게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잦은 건지 아니면 외국도 이런 지 잘은 모르겠지만, 책은 돈을 주고 사서 보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강한 것만은 사실인 거 같다.




내가 작가라 책을 얘기했지만 주변에 이런 일을 겪는 분들이 꽤 많았다. 그냥 좀 가르쳐 달라는 사람, 잠깐 와서 통역 좀 그냥 해 달라는 사람, 잠깐 와서 이거만 고쳐 달라는 사람 등등.

타인의 재능과 기술을 무상으로 쓰려는 사람이 넘쳐난다고 했다.


참 이상하다. 자기 옷은 돈 주고 잘만 사면서 왜 타인의 재능과 기술은 그냥 쓰려고 할까?


얼마 전, 셀프 세차장을 운영하는 지인이 겪을 일이다. 택시 기사가 세차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세차장에 있는 수건에 자신이 가져온 물을 적셔 정말 셀프 세차를 하더란다.


그래서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 물으니 하는 대답이

"아, 요 앞에만 살짝 닦으면 돼서."

"그럼 저도 요 앞까지만 그냥 태워다 주실래요?"

이 말이 딱 맞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자기도 요 앞까지만 그냥 태워줘야지.


두 번째 소설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를 출판하고 나서도 책 달라는 사람은 꼭 있었다. 첫 소설 때는 되려 내가 미안해하면서 책이 없다고 얼버무렸지만 이젠 그러지 않았다.


세차장을 운영하는 지인이 택시 기사에게 대처했던 거처럼 답하거나 돈 주고 사서 보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혹자는 '그래도 한 권 주면 그 사람이 홍보라도 해 주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 달라는 사람치고 책 읽는 사람? 없다. 책을 읽고 알려줄 사람이면 애당초 사서 본다.



인생에서 관계의 정리가 되는 시점이 있다고 한다. 결혼, 돌잔치, 초상과 같은 내 인생의 큰 행사에 왔는가, 오지 않았는가. 아니면 돈이라도 보냈는가. 나에겐 책을 낼 때마다 이런 시점이 생기는 거 같다.


그거 얼마 한다고 그러냐며 책을 그냥 달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이 사람과의 관계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 역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함 중 하나라고 느끼기에.


세상에 무가치한 노력은 없다. 내가 타인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고 싶다면 나 역시 타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책 한 권 줘 봐.'라는 말이 안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뿐만 아니라 그 무엇에 대해서든, 타인의 노력과 시간에 무임 승차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말았으면 한다.

작가도 누군가에게 자기 책을 줄 때 돈주고 사서 주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도 알아주기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작가가 방송 출연하면 생기는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