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도둑
요즘 MZ 세대들에게 유행하는 놀이가 '경찰과 도둑' 놀이. 줄여서 '경도'놀이라고 한다. 온라인으로 경도 놀이할 사람을 모집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만나 술래잡기를 하고 논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쓴 소설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가 이런 공동체의 부활과 무너진 관계를 재건축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아파트에서 윗집 애랑, 옆 동 애랑 막 어울려 놀았던 것처럼 지금의 청년들이 이렇게 놀기 시작했다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가슴 뭉클했던 리뷰
이 독자님의 리뷰가 경찰과 도둑 놀이 소식과 오마주 되며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아파트에 살아도 충분히 우리는 같이 살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살 때도 이 독자님처럼 모르는 같은 애들이 없었고 엄마들끼리도 정말 친했다. 방과 후 그 집에 놀러 가 비디오 게임을 하고 노는 게 이 독자님의 큰 즐거움이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즐거움이 있었다. 방과 후 집에 오면 9층에 있는 형제들과 놀거나, 3층에 있는 형제들과 놀았다. 그것도 아니면 다 불러내 아파트 놀이터에서 함께 놀았다.
응답하라 1988이 그렇게 큰 히트를 친 이유도 이렇게 살던 우리가 그립다는 증거가 아닐까? 쌍문동에 사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의지하고 돕고 살아가는 그 시대. 나는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다시 찾고 싶었다. 지금은 무너져 버린 관계의 재건축. 어쩌면 경찰과 도둑 놀이가 그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갈 길이 멀었다. 이미 많이 무너져있는 관계와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재건축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과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소독하면 극심한 고통이 따르지만 새살이 돋게 해주는 것처럼. 내가 회장이 되자마자 맞닥뜨린 산적한 문제들부터 차례로 해결해야 했다.
진짜 경찰과 도둑이 된 것 같은 기분
이 독자님께서 써 주신 리뷰처럼 아파트에 이런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실들을 입주민들이 모른다는 것과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난 적극적으로 입주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동대표들이 모두 반기를 드는 상황이었기에 난 입주민들의 여론에 기대기로 했다. 대부분의 동대표들이 반대하던 아파트 앱을 가까스로 가결시켜 도입해 입주민의 관심을 모으는데 사력을 다했다.
국민을 이길 수 있는 국가가 없는 것처럼 입주민들의 관심이 생겨나며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많아졌다. 지켜보는 눈이 많아지며 이들의 결속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하며 책임을 떠민다. 그렇게 찰떡같은 결속은 와해되고 이제 서로를 탓하며 공격한다. 결국 한 동대표의 양심선언으로 터질 게 터져버린다. 난 양심선언자가 제공한 녹취 파일을 회의에서 공개했고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결국 엮여있던 동대표들은 자진 사퇴를 했고 오랫동안 철밥통처럼 자리를 지키던 관리소장도 사직서를 제출한다. 이 정리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내가 임기를 맡고 나서 딱 3개월이었다.
경찰과 도둑 놀이가 유행이란 건 좋은 뉴스지만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장인 나와 동대표들이 경찰과 도둑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 결코 기분 좋은 건 아니었다. 하물며 정말 경찰서에 다녀오기도 했으니까. 다 같이 합심하여 좋은 아파트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가 이렇게 변질이 됐다는 사실은 정말 반성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나도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정리를 하는 기간 동안은 정말 나와 그들이 경찰과 도둑이 된 것 같았다.
아파트는 곧 하나의 사회
어릴 적만 해도 이웃은 정다운 이웃이었다는 이 독자님의 리뷰를 보며 왜 우리는 지금 타인에게 그렇게 냉혹한가라는 생각을 한다. 아는 사이만 되어도 관대해지는 우리인데 왜 우리는 모르는 사이를 추구하며 서로에서 혹독해지는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세상은 그 누구에게도 타인에게 냉담하게 변하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경찰과 도둑 놀이에 동참할 때가 아닌가 싶다.
큰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을 정비했지만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개선해야 되는 것들,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들,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 아파트는 단순히 거주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사회와 같다. 조직 정비를 한 후 생긴 하나의 큰 문제적 인간은 바로 8년간 아파트 중앙 주차 공간에 폐차를 주차해 두고 자신의 가게 현수막을 덮어 광고판으로 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8년간 아무도 처리하지 못했던 문제, 이 어려운 걸 또 내가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동주택임에도 혼자 살겠다는 이 인간을 이제 같이 사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칼을 빼든다. -4편에 계속-
젊은 아파트 회장이 경험한 아파트의 신세계.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경험을 버무려 소설로 정성껏 빚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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