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울림 Jan 17. 2021

#.16

주간 <임울림>

부제: 제목은 초심으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의욕을 잃은


최근에는 출입처 변동이 있었다. 월간 매체에서 출입처를 말하며 조직별 취재원 간의 친밀도를 높이라는 지시가 있던 것도 좀 우스운 일이지만, 출입처 변동이라니? 어감에서 아이러니한 기분을 느꼈다. 출입처 한 두 개쯤 더 맡게 되는 소폭 변동이라고 했지만, 매체 정체성에서 혼돈이 오는 상황, 출입처까지 가중된다는 말이 썩 달갑지 않았다. 사실 회의 이전에 소식을 미리 접하고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월간 매체가 갖는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입사를 선택했을 당시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회사는 월간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일간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경영진은 매트릭스 체제로 가겠다고 말했다. 말이야 매트릭스지, 결과적으로 업무를 혼재시키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얼마 되지 않는 기자 인력으로 사업성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문득 근로계약서가 궁금해졌다. 분명 기자라는 직함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업무도 일종의 특수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외주로 간행지를 써내는 일이 기자들에게 들어오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며, 수익 유지를 위한 출입처와의 친밀도 높이기가 지시사항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기사는? 견제는? 단지 소식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걸까?


출입처 변동이 있었던 직후, 상급자는 내가 새로 맡게 된 출입처와 회사와의 연관성을 말하며 더 잘 챙겨야 함을 당부했다. 그날은 어벙벙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퇴근했고, 집에 돌아와서 그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은 지극히 평범한 회사의 어법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회사의 어법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언론이 가진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늦게 자각한 스스로에게도 왠지 모를 자괴감이 밀려왔다. 출입처에 가까워지면서 출입처 비판적인 기사를 써낼 수 있을까? 매월마다 회사 적자 현황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자 시작했던 기자의 업무를 과연 잘해 나갈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는 걸까?


지금의 회사는 매체 환경을 바꿔나가고자 갖은 일들을 가져오면서 해보자고 일을 아래로 떠민다. 박치기 공룡처럼 부딪칠 수밖에 없다. 회사가 가고자 하는 명확한 방향이 없는 상태, 매체의 기조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로 이곳저곳 부딪히는 건 최악의 낭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매체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중된 이미지와 업무의 우선순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예를 들어 소수 독자층을 겨냥한 기사를 써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동안 축적된 기사의 주된 방향은 소수의 목소리에 맞춰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전면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대상을 타깃으로 기사를 써낸다? 시장의 경쟁력 측면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으며, 이는 기존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일과 같다. 두 손 안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셋을 잡겠다는 꼴인 것이다. 결국 손은 두 개뿐이지만 세 개를 잡으려고 하면서 모든 걸 놓쳐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인가? 기존 정체성에 부합하도록 기사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두 가지 토끼를 잡으려고 하다가 모든 걸 놓쳐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힘을 모아도 시원치 않은 판국에 자꾸 주력을 분산시키려는 업무 지시가 지칠 뿐이다. 눈 뜬 장님과 같은 이 상황을 과연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1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