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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울림 Jan 06. 2021

#.15

주간 <임울림>

부제: 잔을 생각하다


누구나 삶을 사면서 수집하는 게 하나쯤은 있다. 생의 주기에 따라 그것들은 다르겠지만 분명히 있다.

생각을 수집하는 사람, 문장을 수집하는 사람, 음악을 수집하는 사람 등 보통 수집 당하는 대상은 그 사람이 애정을 갖는 것들이다.

내가 요즘 수집하고 있는 건 뭘까. 혹은 수집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니 축적하고 있는 건?

일단은 경제적 미래를 축적하고 있다. 경제적 미래란 주식을 말한다. 옛날에 경제라고 하면 너무 어려워서 진절머리가 나곤 했는데, 요즘엔 여러모로 주식시장이 돌아가는 게 재미있어서 자주 접한다.

두 번째는 골동품. 사실 골동품이라 할 것까진 없다. 기껏해야 소니 워크맨 정도(?)니까.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물건에는 왠지 신비로운 감정이 녹아들어 있을 것만 같아서 좋아한다. 이야기와 추억 등등. 나는 잠시 과거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늘 세월의 흔적이 담긴 잔이 품에 들어왔다. 문경에서 대를 이어 백자 장인으로 활동하시는 분이 제작한 잔이다.

색깔이 오묘한 게 참 마음에 든다. 현대미술 작가의 갤러리를 잔 속에 넣어둔 것 같다. 그립감도 적당하다.

예전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세라믹 필터를 통해 커피를 직접 내려마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쓰던 잔의 느낌과 비슷하다. 잔이 제 스스로 호흡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뭐, 아무튼.

우리는 흔히 커피나 차를 마실 때 잔에 대해 자주 잊는다. 커피콩과 같은 원료에 대해서는 집중하지만 정작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는다.

오늘의 잔을 보면서, 집중할 뿐 관찰하지 않는 우리의 흔한 모습이 마치 젊음이 시간을 내달려오면서 길들인 습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말인즉슨 템포를 쉬어가며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는 거다.


EBS 수능특강 국어 문제집을 풀면서, 인강 선생님께서 속도와 관련된 시를 읊어주셨던 게 참 좋았다. 시의 내용이라 하면, 화자인 아버지가 아들이 일찍 차를 사고 거리를 질주하면서 주변의 풍경을 쉽게 지나칠 수 있음을 나지막히 충고하는 내용이었다.


그릇에 따라 집중의 밀도가 가진 가능성이 점차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마치 여행으로 새로운 관점을 얻어 성장하듯, 한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을 넓히는 건 관찰에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

나에게 오늘의 수집은 그런 의미다.
집중하면서 손 쉽게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과 미래의 나에 대한 호기심 어린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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