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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울림 Jan 03. 2021

#.14

주간 <임울림>

지난 12월 중순부터 장장 2주가 넘는 휴가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회사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남은 연차를 급여로 환급받을 수 없다는 공지와 동시에, 경영진의 연차 사용에 대한 모호한 입장으로 보유한 연차를 모두 쓰지 못한 직원들이 많았다. 다행히 11월에 장기간 연차를 낸 덕분에 연차 2일 빼고 모두 소진했으나, 남는 씁쓸함은 영하로 내려가는 밤공기처럼 시리다. 월간지에 인터넷 일간 매체를 동시 지향하며, 게다가 수익사업을 위해 각기 꾸려진 프로젝트까지. 직원들의 몸은 남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취재는 취재대로 부실해져 퀄리티 향상을 노려보기가 힘들다.

 '놀 줄 알아야 창의적일 수 있다' 나의 파란만장한 20대를 대표할 수 있는 문장 중 하나다. 정말 프레시한 정신으로 매일이 새로워서 눈을 안 뜰 수 없는, 그야말로 쨍하고 해 뜰 날이 바로 오늘인 것 같은 날들. 무덤에 계신 잡스 형님도 커넥팅더닻츠-하라시는데, 기사의 형식도 이제는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므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건만, 좀 쉬고 놀면서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려고 하는 찰나,  이에 맥 커터를 해버리는 업무 지시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공장처럼 찍어내는 콘텐츠가 독자에게 외면받고 있으니, 이젠 주먹구구가 통하지 않는 전문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건만, 경영 수준은 세기말에 머물러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렸다. 존 리 선생님께서 가라사대, 금융시장 호황과 더불어 M&A 시장이 활성화된다고 하시니 그 말은즉슨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은 흡수되거나 망할 것이라는 얘기로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안 그랬는데. 친구가 유명해져 미니 쿠퍼 세차를 하는 사진을 소셜 네트워크에 업로드하는 걸 보면서, 다른 친구가 일찌감치 영끌해 집을 사두고 시세차익을 누리는 걸 보면서 스스로에게 측은하고 위축되는 마음이 드는 건 왤까.   

사실상 사향 산업에 뛰어들어 적성에 맞다고 좋아하는 나지만, 위기는 위기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틀리니 지나간 과거 모습을 발판 삼아 희망 하나 품는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이야기하니 그 말을 빌려, 요즘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양쪽에 적어두고 타협점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술 먹고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골절이 된지도 모르고 1년을 살다가, 통증으로 이제야 정형외과를 찾은 미련한 내가 여기에 있다. 오늘 아침엔 인대강화 주사에 도수치료도 받았으니, 친구 아들 예명처럼 '미라클 튼튼이'로 성장하련다. 세상은 넓고 인생은 기니, 롱-런을 위해 신발 끈을 단디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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