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임울림>
애도기간 3년. 너무나도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을 열병처럼 앓았다.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비워내고 싶은 마음으로 성북동을 찾았다. 친구가 지난번 기분전환 겸 드라이브를 시켜준다고 들렸던 곳이었는데, 이번엔 좀 걷고 싶어서 그 언덕을 종횡무진 걸었다. 꼭 들려보고 싶었던 곳. 늦게 결혼한 한 시인이 썼던 시 구절에 등장한 곳. 길상사를 찾았다.
그저 높은 곳으로, 멀리 보이는 곳으로, 트여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마음이 꽉 막혀있는 것 같아서 좀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으니까.
길상사 진영각 마루에 앉았다. 진영각은 법정스님이 계시던 곳이라 했다. 사람들은 머리 숙여 합장을 했다. 나도 따라 합장을 했다. 유년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다가 스님을 보며 '빡빡이!'라고 외쳤던 모습이 겹쳤다. 부모님은 나를 말리셨다. 나는 늘 누군가 곁에서 말려야 하는 포지션이었던 건가.
진영각 마루 귀퉁이에는 작은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 작고 노란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꽃 한번 보고 지붕 끝에 매달려 우는 물고기 모양 풍경도 한번 봤다. 풍경은 바람이 불 때마다 청아한 소리를 냈다.
나는 진영각 마루에 스러지듯 등을 기댔다. 그리고 풍경을 바라보면서, 풍경이 소리를 낼 때까지 기다렸다. 왜 난 기다리는 방법을 몰랐을까. 그러고 보니 내 옆엔 서류가방을 가지고 한 곳만 응시하던 중년이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말끔한 정장차림. 무심하게 꽃을 바라보고, 무심하게 서류가방을 둔 채 부동의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 사람이 왠지 모르게 편했다. 인생사를 덤덤하게 바라보는 것 같던 그 사람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편했다.
아무것도 기다리는 게 없는 것 같던 그 사람은 어느 회장의 비서였던 모양이다. '네, 회장님'하고 전화를 받더니 진영각 문을 열고 한번, 법정스님이 묻힌 곳을 보고 한번 합장하고 이곳을 떠났다.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난 홀로 남은 진영각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인생은 늘 줄초상이라고 생각해 왔다. 우린 늘 비극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하니까. 비극은 늘 도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버텨내면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서 동지적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늘 현명하게 싸울 준비가 되어있던 사람들. 결국 상처는 성장할 발판을 만들었다. 그건 내게 하나의 법칙 같은 것이다. 어떻게든 배워가는 것.
나무들이 흔들렸다. 꽃잎이 비처럼. 가지가지에 푸르게 싹이 자라고 있었다. 꽃잎보다 푸른 새순이 더욱 오래 매달려 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꽃잎이 떨어지고 나면, 푸른 잎이 계절을 견디고, 가을과 겨울을 겪으면서 새 옷을 입기 위해 동면에 드는 것. 그리고 새로 다시 꽃잎을 피우는 것.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랑 비슷하다.
진영각에서 내려와 절을 한 바퀴 돌고, 시원한 황매실차를 마셨다. 잣이 올라가 있었는데 고소하고 좋았다. 아지매들 수다 떠는 소리가 쨍한 햇빛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길상사 화장실 인테리어는 예술적이었다.
극락전에서는 신묘장구대다라니 경이 흘러나왔다. 햇빛이 온몸을 감쌌다. 따스하고 포근했다.
길상사에서 나와 삼청각을 가고자 걸었다. 가는 길은 죄다 언덕이었고, 그래서 좋았다. 대사관로는 언제 봐도 조용하고, 길고양이들은 아무 말 없이 내 발걸음을 바라봤다. 나는 이날만큼은 삼보일배하듯 풍경을 곱씹었다.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한 나에게 필요한 건 현실을 더 명확히 직시하는 힘이었으니까.
삼청각에서 만원 가까이하는 커피를 마시며 풍경을 둘러봤다. 근데 그것도 자꾸 보니까 물린다. 책 읽을 기분은 또 아니고. 그래서 삼청각 앞 정원에서 잔디를 밟았다. 가야금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고, 땅이 나를 꽉 잡아주는 기분. 흙 위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있든 말든 나는 가야금 운율에 맞춰 스텝을 밟았다. 아스팔트와 다른, 흙의 감촉이 좋았다.
근처에 편운정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앉아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중년커플이 '정자에 총각이 앉아 있으니 그림이 따로 없네'라고 말했다. 그 여유와 안정감과 그들 사이의 신뢰가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전에 한 공간을 찾아갔을 때 생각이 난다. 어두운 공간 한편에 놓인 병풍에 대해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은 그게 반야심경이라고 했다. 그리고 반야심경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색수상행식(감각-감정-생각-행동-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이 집착하는 다섯 가지라 말하곤, 이것들이 인간을 괴롭힌다고 했다. 사실 이 모든 게 공(空)한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나는 그간 많이 비워냈다고 생각했는데, 열병을 앓다 보니 깨달았다. 아직도 한참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내 삶의 자세 중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자세가 있다. 바로 명랑하다는 점. 그리고 다시 맑게 나아간다는 점.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 구절을 빌린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낙제는 없는 법'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온다면 차분한 마음으로 타인을 받아들여야지.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다시 연습하고, 연습할 거야. 나도 이번 생이 처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