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딛고 서서

영화 <미스백>, 과거의 기억과 화해하는 법

by 경계

영화 <미스백>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영화 <미쓰백> 스틸컷, 출처: IMDb
연필이 망가진 걸 의심조차 못한 채, 멀쩡한 연필깎이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고치려다가 오히려 망가트릴 뻔했다. 그 몇 분간의 분투는 내 인생과 닮아있었다. 그래서 또 웃었다. 삶의 가장 어둡고 불편한 곳을 이제 그만 바라보자. 그러나 그만 바라보기 위해선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09/05/2020

영화 <미스백>을 처음 본 것은 2019년 겨울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울었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도 울었다. 보는 걸로는 모자라 시나리오를 엮은 책까지 샀다. 당시 주치의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에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며 "주인공 백상아가 저랑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전혀 동의하지 못한다는 감추시며 되물었다. "어느 부분에서 환자분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셨죠?"


백상아는 나와는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놓여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백상아는 바빠서 아플 새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지만 백상아는 넘어질 틈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가 동질감을 느꼈던 이유는 백상아가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가진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백상아가 어린 김지은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관적이다. 지나치려다 멈추고 눈에 밟혀 뒤 돌아본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중의적 표현이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김지은이 백상아의 과거라는 뜻이 아니다. 단지 백상아가 김지은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미스백>이라는 영화는 백상아가 김지은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백상아는 김지은을 남겨둔 채 떠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백상아는 김지은을 향해 아주 먼 길을 되돌아간다. 뛰고 또 뛰며.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백상아는 김지은이 늘 서있던 장소에 선다. 백상아의 자리에 있는 김지은을 올려다본다. 그렇게 둘 사이가 동등해진다. 백상아가 김지은에게 건넨 "곁에 있어줄게."라는 다짐은, 사실 백상아가 가장 듣고 싶던 말이었을 거다.


영화 <미쓰백> 스틸컷, 출처: IMDb


깨끗한 마룻바닥 위에 반듯하게 놓인 소주병들이 서글프다. 아무리 마룻바닥을 닦아도 닦이지 않는 기억도 서글프다. 나를 버린 엄마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함께한 순간이 담긴 사진을 버리지 못했다. 깨끗한 바닥을 청소하고 또 청소하며 상아는 누구를 맞이하고 싶었던 걸까.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한 상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진을 버리는 일이었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복수였을까. 아니면 체념이었을까. 마침표 찍지 못한 원망이었을까. 어쩌면 외면이었을까.


엄마는 죽었다. 사진은 버렸다. 그러나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본디 기억이란 어둠 속에 있어도 발밑에 끊임없이 들러붙는 법이니. 그러면 기억은 좌절일까? 엄마에게 따져 물을 수는 없다. 엄마가 존재했다는 증거도 이젠 없다. 그러나 과거부터 이어져온 백상아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 그에 대한 매듭을 짓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던 과거의 기억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걸 도와주는 존재가 김지은이다. 백상아가 아무리 눈길을 주지 않아도, 자꾸만 자신의 곁에 서있는 김지은. 바라보지 않는다고 그 아이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작은 아이. 자신과 꼭 닮은 아이에게 건네는 어른의 손은 결국 어른의 과거까지 닿고야 만다.


"곁에 있어 줄게요."라는 말을 김지은이 백상아에게 돌려준다. 아이는 어른의 말이, 어른 자신의 어린 시절에 보낸 말이라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걸까.


영화 <미쓰백> 스틸컷, 출처: IMDb

모두가 과거를 기억하며 살아가진 않는다. 더욱이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살아가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나 기억이란 개인의 선택에 의해 남겨지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부분만 간직하고 원치 않는 부분을 도려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도 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상처도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은 인위적인 것이다. 시간은 강줄기처럼 과거에서 현재까지 현재에서 미래까지, 전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기억은 이후의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 그 시간 속을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떤 기억도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과거의 기억은 곱씹을 때마다 조금씩 왜곡된다. 되새겨지는 고통에 의해 재차 왜곡된다. 그렇게 기억은 어느 순간 세상도 집어삼킬 괴물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잊히지 않고 익숙해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면, 그건 끊임없이 또 다른 괴로움들을 만들어낸다. 그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선 과거를 제대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그러기로 마음먹기만 한다면, 나의 발밑을 무너트리고 내 하늘을 집어삼키던 그 괴물이 왜곡되고 변형된 기억의 그림자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단지 시간이 오래 지나 기울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을 뿐이다. 그 그림자의 끝에는 과거에 상처받은 나 자신이 서있다. 그렇게 기억 속에 살아있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발견하는 손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이제 과거를 용서할 수 있다. 현재의 삶을 용서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발밑이 무너질 일도 없다. 그걸 딛고 일어서면 된다.


Jan 10th, 2021 / 수정: Jan 29th,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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