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체의 표정

나는 어떤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by 경계

새벽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을 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거리 신호등이 있었다. 매일 건너는 그 신호등의 불빛이 녹색으로 바뀐 것을 확인한 뒤 빠르게 건너려던 찰나, 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우회전을 한 포트 트럭이 내 앞을 스쳐갔다. 나는 내가 트럭에 부딪혀 날아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새벽에 강변을 달리다 떠오른 생각이다. 내가 죽음을 어떤 표정으로 맞이할지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내 시체가 공포에 질린 표정만큼은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을 했다.

모종의 이유로 나는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을 두 번 경험했다. 신기한 것은 두 번 다 같은 경험을 했고, 나는 의식을 잃는 순간부터 깔깔대며 웃다가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의 순간에 온 마음으로 웃었다. 드디어 끝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러나 의식은 빠른 속도로 다시 돌아왔고 나의 두 팔다리를 붙잡고 있는 엄마 아빠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난 딸이다.

단언컨대 나는 이 경험을 그 어떤 종교적 비유나 사후세계를 엿봤다거나 하는 따위로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뇌에 쇼크가 와서 전기신호가 고장 났을 뿐이란 게 내 판단이다.

첫 번째 경험은 넘어지다 뒤통수를 잘못 부딪힌 탓이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이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는듯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허무맹랑한 내용이었다. 왜냐면 고장 난 의식 속에서 나는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 책 위에 말줄임표를 여러 번 찍어 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신」의 주인공 에드몽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정말로 신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장면이 바뀌어 불교에서 묘사하는 지옥에 끌려가 고문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오며 지은 잘못들을 생각하니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영원할 것 같았지만 비디오 되감기를 하듯 다시 모든 장면들이 반대로 재생되더니 눈을 떴다. 내 몸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며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나는 아주 질기게도 살아남는다. 질기게도.

KakaoTalk_20250525_161118320.jpg 당시에 썼던 인스타그램의 조각글. 사진은 부딪히며 깨진 선반이다.

두 번째 경험은 갑작스러운 발작이었다. 내 방 침대 위에는 클라우드 모네라는 화가의 "해돋이"라는 작품의 모작이 걸려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그림의 제목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한동안 일몰이라고 생각해 왔다. 무의식이란 직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버린다.

5649-024-1024x764.png Claude Monet, Impression, Sunrise (1872). Courtesy National Gallery of Art. ⓒartnet

내 의식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때에도 나는 뫼비우스의 띠 위를 빠르게 지났다. 나에게서 시작해서 우주로 이어졌다. 나는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지웅배 작가의 책 제목)" 거대한 우주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괴로웠던 순간도 이제 끝이다.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났다. 나는 세상의 일부였고 세상도 나의 일부라는 걸 느끼니 모든 게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드디어 끝이구나! 하는 순간 다시 우주에서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이건 두 번의 발작이 있기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대학생일 때였다. 늦은 밤 멍하니 집으로 걸어가던 순간,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부러워하는 어느 아름다운 연예인도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도 사는 동안 타인일지라도 삶 자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세계를 이룬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나라는 사실이 더 이상 괴롭지도 않았다. 단 한 번도 나는 내가 나인 것을 증오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도. 어차피 내가 그들이고 그들도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분 되지 않아 나는 다시 보통의 초라한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의 결핍과 기억들을 등에 없고 동행하며 해결하거나 채워나가거나 받아들이며 매일을 살아가는 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어린 시절 재미있게 봤던 영화나 책들이 아직까지도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꽤 재미있지 않은가,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보았던 것이 책 속의 활자라니 말이다.

두 번의 생사를 넘나들며 나는 웃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시체가 반드시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조깅을 끝내고 돌아오던 새벽, 트럭에 치여 몇 미터를 날아가 몸이 부서진 상황에서도 아무래도 웃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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