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배울 때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문법 다음으로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것, 바로 '발음'이 아닐까 싶다. 유독 한국 사람들이 발음 실수를 겁낸다고 하는데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틀리고 우스꽝스러운 발음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실수를 겁내지 말고 내뱉으라고? 정말 말이 쉽다. 한국어를 배우는 영어 교사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학생들에게 실수를 겁내지 말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본인이 한국어를 할 때는 발음을 틀릴까 조마조마 긴장한다.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틀리고 평가당하는 게 두렵고 싫은 거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등 대한민국의 현 교육 시스템을 지리멸렬하게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전 세계 어디든 공교육 만으로 완벽하게 영어를 하는 곳은 영미권 국가 외에는 없다고 믿는다. 자신의 모국어와는 현저히 다른 생소한 발음들을 익혀 소리 내는 것은 애초에 자연스럽지 못한 습득이고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뭘까? 먼저 '발음'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발음과 억양의 개념을 혼동하는데, 발음은 말하자면 모음과 자음을 혼동되지 않게 내뱉는 것이다. '피자' 대신에 '비자'를 먹는다고 말하면 한국어로 이해하기가 어렵다(실제로 외국인들이 많이 헷갈려하는 발음이다). 우리에겐 명확히 구분되지만 한국어의 'ㅂ' 발음이 영어로는 'P'에 가깝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반면에 억양은, 말하자면 사투리와 비슷하다. 말하는 높낮이, 강세, 리듬 등이 달라도 서울 사람이 부산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영역은? 당연히 발음이다. 정확한 발음 대신 억양에 집착하는 순간 배움은 고단해진다. 서울 출신 배우들이 아무리 연습해도 부산 사투리가 어색하고, 서울에서 10년을 산 부산 사람이 여전히 본 고장 억양을 갖고 있는 것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억양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영어의 큰 특징에 기인한다. 영어는 만국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국제어다. 그만큼 다양한 배경의 출신자들이 자신들의 억양을 일정 간직한 채 영어를 쓰기 때문에 다양성이 더욱 잘 받아들여진고 볼 수 있다. 즉, '발음'에 문제가 없다면 그 외의 강세나 리듬과 같은 자잘한 요소에 신경을 쓸 필요가 전혀 없다. 과거 UN에서 근무했던 반기문 전 총장이 좋은 예시다. 그의 영어에는 진한 한국어 억양이 남아 있지만 유튜브 자동 자막 기능을 켰을 때 매우 정확하게 그가 발음한 대로 자막이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미국 LA에서 방금 온 교포의 억양을 완벽하게 흉내 내더라도 발음이 망가진다면 원어민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어쩌다 억양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비원어민 입장에서 그럴싸한 억양이 언어를 더욱 잘해 보이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어를 가르쳐 주는 유튜버들 중 억양을 잘 따라 하는 사람들의 인기가 상당한데, 그들이 알려주는 게 맞는지 원어민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생각보다 엉터리 문법과 어색한 단어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주 타깃이 영어를 모르고 배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준은 '그럴싸한 말투'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난 내가 영어를 할 때 사람들이 내가 한국 출신이라는 걸 알았으면 하는 주의다. 애국주의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어렵게 외국어로 영어를 습득한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해서다. 내가 만약 토종 미국인이나 영국사람처럼 영어를 한다면, 사람들은 나의 피땀 어린 노고를 이해하지 못할 것 아닌가. 게다가 문법 실수나 잘못된 단어 선택에도 사람들은 더욱 너그러운 것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언어는 생각보다 내력이 깊어서 완벽하게 원어민 행세를 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특히 어린 시절 영미권에서 공유하는 문화나 텔레비전, 혹은 특유의 학교 생활 등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선 마치 군대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면제자처럼 조용해질 수밖에 없다. 외국어를 배울 때 절대 원어민의 수준을 목표로 하면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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