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설렘을 선물했다

66세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는 그녀에게

by 김오뚝

평일에는 여성시대와 지금은 라디오시대, 주말에는 알토란과 동치미. 울 엄마의 최애 방송들이다.

출산 후 거의 좀비가 다 된 딸과 갓난쟁이 손자를 거 둬 먹이러 오셔서 파악하게 된 엄마의 방송 루틴(?).

그중에서도 알토란이 백미인데, 각종 레시피며 건강상식을 노트에 빼곡히 적어두고 본인의 방식으로 꼭 적용해 보신다.


"알토란 보고 자야 되는데 이거 노트에 적어놔야 돼. 나 공부하는 시간이야."

"열무김치에 감자를 갈아서 넣으면 쉽게 안시어진대. 알토란에서 보고 배워서 해봤어, 맛있지?"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월요일, 엄마가 웬일로 알토란 대신 동치미 얘기를 꺼냈다. 동치미에 김미경 강사가 나왔는데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하냐면서 다시 보고 싶다고. 평소 나도 김미경 강사님 팬이었던지라 그 길로 바로 스트리밍 앱을 켰다. 강의 주제는 '힘든 상황에서 나를 지키는 법'이었는데 역시 명강사답게 코로나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어떻게 스스로 더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맛깔나게 풀어내고 있었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던 차에 책 이야기가 나왔다. 15년째 투병 중인 어머님께 책을 보내드렸는데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라는 책을 읽으시고는 나도 힘들지만 이 책 속에 이 사람들보다는 살만하다고, 그래서 더 살아갈 힘을 느꼈노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님을 보면서 정말이지 책의 위력을 다시금 실감했다고 했다. 책 속에서 나를 위로하는 법을 찾게 된다고 말이다.


"엄마, 엄마도 저 책 사줄까?"


생각해보니 중학생 때 이후로는 엄마에게 책을 선물한 적이 없었다. 은연중 엄마는 책 별로 안 좋아하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프로에서 좋아하는 강사가 이야기하는 책이니 한번 읽어보시면 어떨지 해서 물어봤다.


"응 좋아, 그동안 책 읽을 시간도 없었는데 이참에 나도 한번 읽어보지 뭐."

"엄마, 그리고 김미경 강사 좋아하면 김미경 강사 유튜브 채널도 있는데 그것도 한번 보셔"

"어머 유튜브도 있었어? 나 좀 알려줘 봐. 공부하게. 공부해야겠어."


그 길로 바로 책 주문을 하고 다음날 책을 받아 엄마에게 건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의 설레는 모습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 오늘은 여기까지 읽었노라고 책 한쪽을 접어둔 채 상기된 얼굴로 뿌듯해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 내가 잠깐 눈 부치러 들어갈 때나 혼자 시간을 보내 실 때 습관처럼 틀어두었던 뉴스 채널과 임영웅 메들리가 김미경 TV의 유튜브 영상으로 바뀌었던 것이.


엄마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며 아예 노트까지 따로 마련해 두고 유튜브 내용이며 책의 내용이며 적기 시작했다. 빼곡하게 노트필기를 하고 나면 흡족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시금 설명도 해주고 배우니까 너무 좋다고 어깨를 들썩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엄마는 늘 공부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합격통지서를 받고도 9900원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갔는데 그때 졸라서라도 갈 걸 그랬다고 나지막이 되뇌었던 엄마. 9 살 때 학교에 가지 말고 동생을 돌보라는 할아버지 말씀을 어기고 학교에 갔다가 엄청나게 혼이 났던 날이 생생하다고 회상하는 엄마의 얼굴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배움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랬었구나. 엄마가 새벽같이 꽃시장을 다니고 장사를 하면서 빠듯한 시간을 쪼개 몇 번이고 검정고시를 봤던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데 이제야 그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한쪽 가슴이 시큰해졌다.


본인이 겪은 것을 자식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혹여 지원이 부족해서 배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엄마는 내가 원하면 과외고 학원이고 있는 힘껏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묵묵히 지원해 주시면서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일절 들어본 적이 없고 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과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말만 해주셨다. 그런 엄마 덕분에 난다 긴다 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외고부터 시작해서 프랑스 유학도 다녀오고 대학원까지 졸업해서 모자람 없이 배우고 공부할 수 있었다.


문득, 나에게는 그저 당연하기만 했던 공부가 엄마에게는 치열하게 싸우고 원해도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고, 또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내가 맘 편히 공부할 수 있었구나 다시금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엄마 공부를 돕겠노라고.


"컴퓨터도 배우고 싶고, 영어공부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은데 엄마 나이가 있어서 참 그렇다. 너무 늦은 것 같아."

"엄마, 인생은 60부터라잖아. 그렇게 따지면 엄마 겨우 이제 6살이야! 앞으로 다 하면 되지!"


6살이라는 말에 엄마가 소녀처럼 웃는다. 읽은 책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성취감에 기분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엄마의 고백은 나까지 덩달아 기분 좋게 한다. 진작에 책을 읽었으면 지금 몇 권은 더 읽었을 텐데 아쉽다면서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어느 날은 블루투스 키보드로 필사를 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몇 번 연습해보시고는 또 너무 행복해하신다.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게 너무 즐겁다고 앞으로 하나씩 찬찬히 다 해나갈 거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오뚝 아, 이제 너희 집에 올 때마다 엄마는 너무 설레.
또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잖아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설렌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니 괜스레 뿌듯해졌다. 내가 엄마에게 선물한 건 책이 아니라 '설렘'이었구나.


" 배우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의 눈빛은 늘 빛난다. 허무함이나 고독은 찾아볼 수 없다. 배움에 설레는 사람은 빛이 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들어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다 (고수의 학습법 中/ 한근태 작가)"


설레는 엄마의 얼굴이 빛이 난 건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 가방끈으로는 내가 더 길 지언정 30년 인생선배이자 육아 선배인 엄마가 계속해서 배우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앞으로도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제 얼마 후면 육아휴직도 끝이 나서 앞으로 엄마와의 이런 시간은 어쩌면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더 귀한 이 순간. 이렇게 또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울 엄마.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엄마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며 내일은 또 어떤 설렘을 선물할지 고민하며 자야겠다.


배우기를 멈춘 사람은 스무 살이든 여든 살이든 늙은이다.

계속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젊다.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은 마음을 계속 젊게 유지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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