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들렌, 파숙지

엄마의 엄마를 만난 날

by 김오뚝

외할머니는 엄마가 스물셋 되던 해 돌아가셨다고 했다. 환갑도 채 되시기 전, 몸져 누우 신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약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돌아가셨다는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의 얼굴은 어쩐지 더 쓸쓸해진다. 스물셋이라니,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엄마보다 10살도 훨씬 넘은 나이지만, 가끔 언젠가 찾아올 엄마의 부재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데 엄마는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뎠을까.


"너는 엄마가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엄마는 엄마가 없었어"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를 넘어서면서, 그리고 엄마의 나이가 그 시절 외할머니 보다도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 엄마는 부쩍 외할머니를 더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엄마는 나에게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나눠주려 했지만, 얼굴도 모르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머니의 존재는 내게 그저 먼 옛날이야기 속 주인공 같았다.


그런 외할머니를 엄마의 엄마로 만나게 된 건 엄마의 딸이기만 했던 내가 엄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봄 어느 저녁이었다.

갓 태어난 손주와 몸조리하는 딸을 거 둬 먹이려 일주일에 며칠씩 딸네 집에 머물러 오는 엄마의 양손엔 늘 반찬이며 제철 채소가 한가득이었다. 갓담은 겉절이와 열무김치 그리고 돌나물 한팩, 달래 두 팩, 쪽파 두 단, 대파 한 단, 감자 한 무더기, 양파 한 묶음에 고추, 파프리카까지 카트에 한아름이다. 아무리 차를 타고 오셔도 엄마가 매번 너무 고생스러우실 것 같아 나도 여러 번 만류는 했지만 가져오시는 재료마다 밥 한 그릇 뚝딱하는 반찬들로 변모하니 더는 저항 않고(?) 주시는대로 잘 먹기로 했다. 특히 엄마가 오시지 않는 날은 냉동밥에 즉석식품으로 후딱 때워버리기 일쑤다 보니 엄마표 상차림이 매번 기다려졌다. 대단한 재료가 아니어도 전라도 손맛을 자랑하는 엄마의 음식은 언제나 그렇듯 여전히 맛있었다. 분명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하는데도 엄마의 맛은 쉽게 따라 할 수가 없다. 철마다 바뀌는 제철 채소와 참기름과 들기름, 고춧가루, 설탕, 간장 같은 양념 몇 가지, 다진 마늘만 있으면 고소한 나물이며 무침, 구수한 된장국까지 어느 하나 젓가락이 가지 않는 게 없다. 평소 김치를 잘 먹지 않는 나름 까다로운 입맛의 남편도 엄마 김치는 몇 접시고 비워내니 엄마의 맛은 30년 넘게 단골인 우리 가족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 날은 엄마가 만들어 둔 달래 간장이 동이 나서 콩나물 밥에 풋마늘 간장을 뿌려서 밥을 먹으려는데, 접시에 못 보던 반찬이 하나 있었다. 김치도 아닌 것이 나물도 아니고 영 처음 보는 음식이라 엄마에게 출신(?)을 물었더니 그 이름도 생소한 '파숙지' (*파나물의 방언/네이버 사전)란다. 엄마의 맛 단골이 3N 년 차인데 그동안 왜 이건 한 번도 보지 못했는지 물으니 엄마는 봄에 곧잘 해 먹었는데, 나와 동생이 어릴 땐 파를 별로 안 좋아하니까 엄마만 따로 해서 먹었다고 한다. 하긴, 파김치를 싫어하진 않지만 꼭 먹고 나면 냄새가 깊게 베여 하루 종일 입속에 파가 있는 기분이라 파김치를 먹을 땐 늘 조심하곤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게 존재감이 강한 파로 만들었다니 심지어 처음 보는 비주얼이라 손길이 갈까 하다 돌나물로 가고, 젓가락질을 할까 하다 손이 또 열무김치로 갔다. 그렇게 반쯤이나 식사를 했을까, 어디서 아삭아삭 이렇게 맛있는 소리가 나나 싶어 보니 엄마가 콩나물 밥 한 숟갈을 크게 뜨더니 파숙지를 서너 개쯤 집어 올린다. 그리고 뒤이은 아삭아삭 소리.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나도 한 점만 먹어보기로 하고 젓가락을 가져간다. 손톱 크기만큼씩 성겅성겅 썰어진 쪽파 위에 고춧가루 양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히 올라가 있다. 데쳐서 그런지 꼬들꼬들한데 그 위에 참기름 때문인지 수분 가득한 콩나물 밥 위에 올리니 유난히 더 윤기가 흘러 보인다. 그리고 한번 더 그리고 두 번 더.


"아, 이 맛있는 걸 왜 혼자만 드셨댜"


서울 토박이면서 꼭 이럴 땐 엄마처럼 전라도 사투리를 좀 섞어줘야 할 것 같다. 그저 파를 데쳐서 무쳤을 뿐인데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싶어 엄마가 조금 만들어둔 파숙지 한 통을 다 비웠다.


의외의 반찬에 열광하는 엄마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파숙지를 보면 꼭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다.

막 전쟁이 끝나고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그때, 들에서 산에서 나물을 뜯어다가 무쳐먹고 끓여먹었는데 봄이 되면 외할머니가 꼭 파숙지를 상에 올렸다고 한다. 그때 엄마도 어려서 파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외할머니가 그렇게도 이 파숙지를 잘 드셨다면서 말이다. 그때 당시 8살 9살 꼬마의 기억에 엄마가 좋아했던 반찬으로 남았고 그렇게 엄마를 기억 속에서만 만나야 했던 나이부터 파숙지를 자주 해 먹었다고 말이다.


나의 마들렌이 된 파숙지

올해 처음 파 숙지를 맛본 나는 이제 매 년 봄마다 파 숙지를 찾을 것 같다. 그리고 먹을 때마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엄마를 떠올릴 것이고 또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스완네 집 쪽으로'를 보면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으면서 옛 기억에 빠져들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 프랑스어 전공자 아니랄까 봐 15년 전 프랑스어 강독 시간에 읽었던 부분이 나에게 파숙지로 연결되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마들렌,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밑반찬이겠지만 그것이 나와 엄마에게 각자의 엄마에게 그리고 나의 외할머니에게 향하는 통로가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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