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라 읽고 엄마라 부른다
엄마가 잡지에 나왔다.
개인 메일을 거의 확인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손이 가는 날이었다.
수많은 광고 메일들 사이에서 단번에 내 눈을 사로잡은 메일이 있었으니 발신자는 다름 아닌 브런치!
'작가', '새로운', '제안', 서로 떨어뜨려 놓아도 하나하나 다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단어들이 무려 한꺼번에 들어있는 메시지라니! 설레는 마음으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제목을 클릭해서 들어가니 어느 잡지사 기자님에게서 보내오신 메시지였다.
https://brunch.co.kr/@otoutkim/9 -이 글을 보시고 보내오신 것 같다.
작년에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된 뒤 총 2번 제안을 받아보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내가 아닌 우리 엄마를 찾는 제안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 엄마도 이제는 정말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어쨌든 늘 제안은 설레는 것. 기자님이 정성스레 써내려 가신 글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엄마에 대해 쓴 글을 보시고 '할머니의 부엌 수업'이라는 코너에 엄마의 인터뷰와 함께 엄마의 요리도 함께 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오-!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선물해 주는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고,
둘째로는 엄마가 과연 이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 관심이 갔다.
MBC 여성시대에 20년 넘는 애청자로만 남아있는 울 엄마가 아직 보내지 못한 수많은 편지들을 드디어 공개적으로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막상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타이밍을 고민하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잡지사에서 내가 엄마에 대해서 쓴 글을 보고 연락이 왔어.
'할머니의 부엌 수업'이라는 꼭지로 엄마 인터뷰를 하고 싶으시대."
"아니 무슨 글?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무슨 글을 어디에다가 쓴 거야!?'
"브런치 있잖아, 내가 말했던, 엄마도 저번에 보여드린 앱 있잖아. 엄마가 내 글도 보셔놓구서는"
"아, 그래 한 번인가 보여주고 그다음엔 어떻게 보는 줄 몰랐지. 한번 보여줘 봐 뭘 썼다는 건지"
"자 여기여기 "
"언제 이런 건 다 썼디야, 아이고 참, 근데 뭐 내가 뭐, 무슨 인터뷰를 한다고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
쑥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야..라고 말끝을 흐리는 엄마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엄마는 하고 싶다. 그래서 조금 더 엄마를 설득하기로 한다. 코로나로 시국이 뒤숭숭한 상황이었지만 2020년을 마무리하며 엄마와 나에게 또 다른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어 엄마가 하고 싶으시다면 적극 지원해 드리고 싶었다.
"할머니의 부엌 수업이라면서. 나 할머니 아닌데.. 어디, 나온 사람들 좀 보여줘봐 봐 "
"내가 하는 음식이 뭐 특별할 게 있나, 내가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근데 다른 사람들은 뭐 했다고?"
자꾸만 여러 가지 핑계를 대긴 하지만 그래도 싫지 않은 내색이 역력하다!
"엄마 하시고 싶으면 하시는 거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생각해보고 알려주셔"
깊어진 밤에,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니 엄마에게 꼭 생각해보라는 당부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네가 벌려 놓은 일이니 할 수 없지 뭐 , 내가 해야지 뭐 한다고 말씀드려, 뭐 나를 누가 알아보겠어 그래, 하자해. 근데 뭘 준비하면 좋을까~~"
역시 우리 엄마다. 무심한 듯 툭 던졌지만 난 안다. 엄마가 얼마나 생각하고 고민했을지. 엄마 머릿속에는 이미 수가지의 음식 레시피가 떠다니고 있었고, 어떤 걸 '제대로'대접해야 하나, 당장 손주를 보느라 우리 집에 계신데 장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래저래 마음이 부산한 게 느껴졌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나도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기자님께도 양해 말씀과 함께 거듭 부탁을 드리고 일정을 잡았다. 일정과 함께 레시피를 소개할 음식을 선정해야 했는데, 워낙 창간한 지 오래된 잡지이기도 했고, 해당 꼭지도 나름 몇 년 동안 지속돼 온 터라 엄마가 자신 있어라 하는 음식들은 이미 한 번씩은 소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렇게 꽃게무침에서 콩나물 잡채로, 그리고 다시 호박 팥죽으로 정해지기까지 몇 번 더 이메일이 오간 뒤, 12월 중순으로 일정이 잡혔다.
그리고 대망의 인터뷰 날! 곱게 단장을 시작한 엄마는,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일부러 내가 쉬는 날로 일정을 잡아서 나는 아이를 보고, 엄마가 부엌에서 인터뷰며 음식이며 준비하실 수 있게 했다.
인터뷰 1시간 전, 그래도 손님 접대상인데 푸짐해야 한다고 엄마는 꽃게도 무쳐놓고, 김장김치도 썰어놓고, 엄마를 인터뷰로 이끈 '파 숙지'도 내놓고 호박 팥죽도 한솥 끓여 그릇 가득 담아두었다.
나에게 연락을 주신 기자분도 워낙 조심스러운 시국이니 사진기자 1분과만 동행하신다고 했고 인터뷰 역시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진행됐다.
그리고 시작된 인터뷰! 혹시 몰라,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안방에서 가만히 들려오는 소리만 듣고 있었는데, 우리 엄마 이야기 꽃에 다들 매료되신 기분이다. 종종 들려오는 기자님 목소리에 막힘없이 본인 이야기를 해낸 엄마는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사진작가님과 함께 촬영을 시작했다. 나까지 촬영하시는지 모르고 무방비 상태로 있던 터라, 엄마와 손자의 오붓한 마지막 컷으로 촬영은 끝이 났다.
그렇게 울 엄마의 첫 촬영이 끝이 나고 정리를 하고 차비를 하시려는 기자님에게 엄마는 빼곡히 써 내려간 A4지 몇 장을 기자님께 내밀었다. 혹시라도 필요하실까 싶어서 미리 레시피랑 인터뷰 내용 좀 적어봤다고 도움이 되시면 쓰시고 아니면 마시라고. 역시나 포인트는 무심하게.
"어땠어 엄마, 재밌었어?"
"응, 너무 재밌었어. 고마워!"
기자님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엄마는 상기된 얼굴로 큰 시험을 잘 마친 학생처럼 대답한다.
"근데 오뚝 아, 엄마 어제 밤새 니 글 다 봤어.
언제 이런 걸 다 썼어 그래. 내가 보면서 그동안 너무 몰랐구나 생각이 들어서 울면서 봤어.
우리 딸이 이렇게 힘들었구나, 내가 참 모르고 있었구나 싶어서 눈물이 나더라. 아무튼 고마워"
이러니 내가 글을 계속 쓰고 싶어 질 수밖에 없다. 역시 우리 엄마, 나의 뮤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