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울렸다

엄마의 20년 지기 친구를 만난날

by 김오뚝

엄마는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다.

억척스러운 이 시대의 어머니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슨 일이든 열심히, 그리고 끈기 있게 해내는 우리 엄마.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강인하고 대찬 사람이었다.


손주를 봐주러 와주시는 동안에도, 청소며 설거지며 요리며 도대체 그 시간이 어떻게 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뚝딱뚝딱해두시는 걸 보면서 혀를 내둘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에너지가 뿜 뿜 넘치는 남자 아기를 감당하기에 30대인 나도 힘이 부친데, 손주를 보면서 동시에 당신 자식까지 돌보고 계신 우리 엄마는 언제부터 이렇게 강해졌을까.


집안일을 봐주시는 이모님이라도 불러드리겠다고 해도 '이거 뭐 일이라고' 연신 손사래를 치는 엄마를 뒤로하며 매일 출근길에 오르는 나의 마음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딸의 마음까지 헤아린 걸까, '엄마가 할 수 있을 때 해주는 거야, 괜찮으니까 하는 거야. '라고 읊조리며 오늘도 허리를 두드리며 잠자리에 드는 엄마를 보면 나는 과연 우리 아들에게 우리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되묻는다.


겉으로는 철의 여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강인한 엄마지만, 속마음은 그 누구보다 여리고 순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늘 '괜찮다, 우리 오뚝이는 할 수 있다'를 표어처럼 되풀이하며 당신의 힘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나눠주는 엄마이기에 나 역시도 그런 엄마의 모습을 잊고 있다가 요즘 들어 엄마의 여린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땐, 엄마가 우는 모습은 거의 못 봤던 것 같다.


그런 여장부 같은 엄마 아래 자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울보였다. 영화를 보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슬퍼도, 기뻐도, 화가 나도 눈물부터 났던 나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아보려 애를 썼던 기억이 많이 있다. 그랬던 내가, 소나무 같이 한결같이 든든했던 우리 엄마를 울리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엄마의 20년 친구에게 편지를 쓰다 (feat. 여성시대)


작년 육아휴직 중에, 내심 마음에 품어왔던 꿈인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1번의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2번째에 작가로 선정이 되었다. 시간이 나면 그 시간을 모으고 모아서 브런치에 한 번씩 글을 쓰는 게 나에게는 가장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내가 쓰고 싶어 쓰는 글이고,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속마음들을 하나둘씩 꺼내 놓다 보니 김 오뚝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연재했고, 남편이나 동생 말고 정말 소수의 친구들 제외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딱히 알리지는 않았더랬다. 글을 올리고 나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고마워서 몇 번 자랑삼아 몇 명이나 내 글을 읽었노라고 엄마랑 얘기를 하곤 했는데, 당시에는 엄마에 관련된 글이 주로 많았던 지라 멋쩍어서 그냥 나중에 알려주마고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다 엄마가 내가 선물해드린 무선 키보드를 사용하게 되면서, 엄마도 한번씩 쓰고 싶은 글을 쓰시라 나름 메모장 겸용으로 브런치 앱을 깔아드렸다. 작가 신청은 하지 않더라도 계정만 있으면 일단 작가의 서랍에 차곡차곡 글을 저장할 수 있으니, 엄마는 이따금씩 책을 읽다가 봤던 구절을 적어두기도 하고, 여성시대에 보내고 싶은 글을 쓰겠노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브런치는 메모장 대신이었다.


엄마가 본격적으로 브런치를 활용하게 된 건 얼마 전 일이다. 동생은 내 브런치 구독자인데, 한 번은 글을 읽고 이야기하는걸 엄마가 듣고 어디서 보면 되는지 왜 안 알려주냐고 하도 성화 셔서 엄마의 구독 작가 목록에 나를 올려드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 까, 엄마가 한 번은 밤새 내 글을 다 읽어 봤다고 했다. 그것도 울면서. 실제로 '울었는지' 아니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명 깊게 봤다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는 내가 이렇게 까지 힘들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늘 가까이 있었고, 대화도 많이 한다고 했었는데 진짜 속마음을 전해주는 건 말보다도 글의 힘이 정말로 센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엄마의 눈물을 본건 3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엄마의 20년 지기 절친 MBC 여성시대에 내 사연이 소개된 것. 같이 라디오를 들을 때면 나오는 사연을 들으면서 엄마는 '나도 쓸 이야기가 한가득인데' '나도 사연 한번 보내볼까' '사연 보내보고 싶은데' 보내야지 보내야지, 그럼 꼭 보낼 거야 하고 다짐만 연신 해댔었다.


내가 올린 브런치의 글을 보고 엄마에게 섭외가 온 잡지 인터뷰까지 한 뒤에는 정말로 글을 쓰겠노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손주 보랴 큰딸 챙기랴 여의치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주말엔 집에 가 계시기도 하니까, 조금이라도 써보시라 엄마를 독려만 하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어서 내가 먼저 나서기로 했다.

내 글이 소개되면, 엄마도 글을 쓰겠노라 하셨으니 정말로 소개가 될 작정(?)으로 글을 쓴 것.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벼르고 별러 3월이 끝나가는 어느 날 'MBC 여성시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엄마가 없는 엄마에게 엄마가 쓰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나니 두세 시간이 훌쩍 흐른 것 같다. 소개가 안되면 될 때까지 쓰겠노라 다짐하기도 했지만, 20년 넘는 장수 프로그램답게, 손 편지고 온라인 사연이고 나름 경쟁률이 높다고 들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이나 흘렀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저녁에 게다가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고 있었는데 잠시 후 도착한 문자에서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토요일에 방송이 될 예정인데 혹시 같은 사연을 다른 방송에도 올렸는지 확인차 연락 주셨다고. 물론 그럴 일이 없다. 오롯이 나의 타깃은 여성시대였으니까.


그렇게 20년 동안 망설이던 엄마를 대신해서 글을 올렸고 방송을 타던 3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 엄마는 본가에 가시고 안 계신데, 아침부터 라디오를 틀었다. 순서까지는 몰랐던 터라 열심히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2부 마지막 사연으로 내 이름이 들렸다. 나 조차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쓴 글이 다른 이의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이 짐짓 민망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얼른 가족 카톡방에 지금 사연이 나오고 있노라고 외쳤으나,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다 생각했는데 일요일 아침이다 보니 까맞게 잊으셨단다.


그래서 그날 밤, 다시 우리 집에 온 엄마에게 다시 듣기로 사연을 틀어드렸다.

나는 내가 쓰기도 했고, 듣기도 했어서 그저 흘려가며 들어가고 있는데, 소파에 앉은 엄마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하다. 한 줄 한 줄 읽어가면 갈수록 엄마가 자꾸 얼굴을 만진다. 가까이 다가가 고나서야 알았다.

엄마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전 글에서도 몇 번 적은 적이 있지만, 스물셋에 엄마를 잃은 우리 엄마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더 특별하고 애틋하고 언제 들어도 마음 아픈 존재인가 보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다르게 다가온 외할머니의 존재도, 그리고 늘 곁에 있었지만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 다르듯, 엄마도 그렇겠지 생각하니 나도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져 고개를 돌렸다. 나까지 울어버리면 두 모녀가 꺼이꺼이 울어버릴 것 같아서.


내가 보냈던 글 말미에, 엄마에게 이제 내가 글을 썼으니 엄마도 여성시대에 꼭 사연을 보내시라 당부를 했더니만 양희은 선생님이 엄마의 글을 꼭 기다리고 있겠노라 한번 더 쐐기를 박아주셨다.


그리고 1-2주쯤 흘렀을까.

대뜸 "전 국민(?)에게 약속을 해놨으니 이제 보내야지"라고 무심한 듯 말하던 우리 엄마는, "해외에서도 많이 듣는다' 면서 나처럼 밑져야 본전이라고 사연을 보냈다고 했다. 손편지로 꾹꾹 눌러 담은 엄마의 마음이 엄마의 20년 지기 절친에게 꼭 닿기를 바라면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 방송된대"

"응? 뭐가"

"여성시대, 사연 당첨됐다고 연락 왔어 나도"

"오 역시! 엄마 대단하네!"


그리고 그날은 다 같이 모여서 엄마 사연을 들었다.

운이 좋았는지 엄마의 사연은 그날 첫 사연으로 읽혔다. '두 딸과 엄마'라는 제목으로 보내진 사연은 우리 두 딸에 대한 엄마의 마음, 그리고 너무 일찍 떠나보낸 엄마의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마가 늘 하던 이야기들이라서 나는 다 아는 이야기들일 줄 알았는데, 딸들에게 선물을 받을 때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옥빛 한복 말고는 더 해드린 게 없어 그게 너무 마음이 사무친다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이내 저릿저릿해졌다. 그리고 그때가 또 떠오르셨는지 못내 또다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또 아렸다.


문득, 엄마가 강해 보였던 건 순전히 나의 엄마였기 때문이고,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의 딸이자, 고된 삶을 꾸려왔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다시 되뇐다.


이제 기껏 2년 차 엄마가 된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내 모습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글도 쓰고 일도 하고 엄마이기 전에 온전한 '나'로서의 모습을 지킨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내가 힘든 것만 생각하느라, 30년 넘게 거진 엄마로만 살아온 우리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자신의 삶이 있다는 걸 너무 몰랐던 것 같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우리 엄마였으니까, 늘 우리 엄마이기만 할 것 같았고 엄마도 나처럼 때로는 여장부처럼 강인하고 때로는 천사처럼 따뜻한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딸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몰랐다.


이제는 나도 엄마다

예전에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울보였는데 요즘은 어지간한 일로는 그렇게 쉬이 눈물이 흐르지 않는 걸 보면 (산후 우울 기제 외) 나도 어느새 강인한 엄마가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눈물이 없어지는가 싶다가도 어제는 햇살처럼 해사하게 웃는 아이를 보면서 왈칵 눈물이 맺혔으니 내가 눈물이 줄어든 건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이 더 많아져서 그런지도, 어쩌면 나도 모르는 동안에 눈물로 엄마가 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나무처럼 우리를 품어주던 엄마가 이제는 들판에 피어 있는 들꽃 같아 보인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꽃을 피운 들꽃. 강해 보이지만 하늘하늘 흔들리는 여린 들꽃 같은 우리 엄마를 이제는 내가 지켜 드려야겠다.


소중한 나의 엄마, 엄마의 엄마는 떠나고 안 계시지만 이제 엄마가 된 딸이 엄마를 지켜드릴께요.

사랑합니다. 정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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