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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Jan 01. 2021

두 명의 보스가 있습니다.

빅보스와 베이비 보스

2020년 2월 3일, 퇴근이란 없는 곳에 발령받은 날.

2020년 8월 3일, 동시에 두 명의 보스를 모시게 된 날.


2020년 마지막 날, 나를 가장 힘들게도 했고 가장 기쁘게도 했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사건들이 발생한 해로 기억될 2020년은 김 오뚝이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성장과 더불어 또 다른 자아의 탄생, 엄마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 있는 해였다.


나의 사랑, 베이비 보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해보니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연말을 맞이 했었다. 조산기로 침대 곁을 떠나지 말라는 처방을 받고 누워있다가 체중이 공처럼 불어나 굴러다니던 그때만 해도, 올해는 보란 듯이 화려한(?) 연말을 맞이하리라 다짐했었다. 오늘도 그때와 다름없이 잠옷 차림에 질끈 묶은 머리로 맞는 연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보석 같은 존재와 함께 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화려한 연말이 맞다고 위로해본다.


지난 2월, 이미 예고되어있었지만 그래도 늘 발령은 갑작스럽기 마련이다. 2월 9일 정도로 생각하던 그날이 갑자기 3일로 당겨졌다. 발령받기 까지도 쉽지 않았는데, 보스를 만나는 과정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도제를 맞고 분만실에 누워 5시간 동안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순간, 수술대로 옮겨져 만난 그의 모습. 보기에는 아주 젠틀하고 순해 보이셨는데 역시 사람은 첫인상 보고는 모르는 거였다.


기본적으로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나의 보스는 우선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아서 해주길 바랬다. 식사시간도 자는 시간도 정해주는 게 아니라, 모두 내가 알아서 맞춰드려야 한다. 근무시간은 주말은 24시간 평일은 14시간 정도 되는데 쉬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보스 오침 때 운이 좋으면 1-2시간, 그렇지 않으면 눈치껏 알아서.  연차, 휴가는 없다. 그나마도 코로나가 이렇게 심해지기 전에는 같이 사는 동료직원에게 잠시 부탁하고 한두 시간밖에 나갔다 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다.  원칙적으로 잠드시고 나면 퇴근이긴 하지만 호출하면 언제나 달려가야 한다. 심지어 호출 소리는 크기도 소리도 달라서, 잘 때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자야 한다.


어디 이뿐일까, 시시때때로 필요한 생필품도 조달해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한다. 주간에는 심심하지 않게 딸랑이, 졸리 점퍼, 볼풀, 소리책, 어부바, 에듀 테이블 등등으로 보스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도록 보살펴드려야 한다. 그리고 야간에는 쉬이 잠에 드실 수 있도록 시간 맞춰 먹여드리고 재워드려야 한다. 다행히 저녁에 잠이 드시면 퇴근 비슷한 것을 할 수는 있지만, 퇴근해서도 자주 부르시는 경우가 많아 이제 그냥 퇴근을 안 한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이런 곳이 있나 싶었다. 2시간도 안 재우고 계속 일을 시키는가 하면 1시간 간격으로도 호출을 받아서 거의 좀비 상태로 3-4개월을 보냈던 것 같다. 그때는 아무리 보스라도 이렇게 까지 할 수가 있나 싶으면서 한창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했었다. 그 덕에 브런치 글쓰기도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의 보스는 '다 계획이 있구나' 싶다가도 가끔씩 이렇게까지 나를 하드 트레이닝하는 연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하지만 말이 통해야 말이지. 통역사 가오 (?)가 있지. 외국어라면 호기롭게 배워서 말해보겠는데, 문법책도 표현 책도 전혀 없는 언어라 가끔 무어라 답은 해주는데, 대충 짐작할 뿐이다. 주변에서는 내가 보스의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보스가 내 언어를 하기까지 기다리는 게 빠르다고 하니, 그 편을 택하기로 한다.

 

늘 새로운 나의 보스, 어제와 오늘이 또 다르다.

이제 발령받은지도 10개월을 지나 함께 호흡을 맞춘 것도 곧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능숙해지는 것보다 알아가야 할게 더 많고 하루가 새롭게 과제를 쥐어주는 나의 보스는, 성장지향형이다. 성장이라면, 자기 계발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로서는 그런 면에서는 우리 보스와 참 잘 맞는데, 다만 체력이 너무 달린다. 분명 뭘 먹고 계신지 내가 다 꿰뚫고  있는데, 심지어 기미상궁처럼 가끔 맛도 보는데 이걸 먹고 저런 에너지가?라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말하지 않아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보스는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나를 성장시키고 있음에는 분명하기 때문에 그의 리더십(?)을 믿고 앞으로 남은 고용기간을 성실하게 보낼 예정이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서 만난 보스인데, 어떻게 발령받은 자리인데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지 싶다가도, 내가 한 것 보다도 더 많은 행복감과 사랑으로 보답해주는 보스인지라, 아니 이미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지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끝까지 힘내서 버티고 또 버텨보려고 한다.



나의 자랑, 빅보스


빅보스를 뵙게 된 건 베이비 보스를 품기 직전이었다. 어쩌면  두 사람은 나의 인생에 이렇게 시의적절하게 등장했는지. 그때만 해도 베이비 보스의 출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직이라는 걸 결심하기도 했었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빅보스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하고 출근하기 일주일 전에 내게 베이비 보스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빅보스를 만나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들려왔던 이야기는 '대단하신 분, 한국인 같은 프랑스인, 쉽지 않을 것, 그리고 회사에서 가장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일이 아주 많을 것'이란 이야기였다. 오죽하면 그 자리에 사람을 이렇게나 자주 뽑겠냐는 말도 들렸고, 당시 직속상관과의 면접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지만 결코 맞추기 쉽지 않은 분이라는 말도 들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만 되뇌며 완벽하게 내가 원하던 환경 (프랑스어를 활용해서 일하기, 프랑스인과 일하기, 통번역이 아닌 다른 일에 대한 기회가 주어질 것)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분이지만 그보다 열정적이고, 도전적이고, 관대하면서도 엄격한 빅보스에 회사 내에 대놓고 팬,  숨어 있는 팬, 숨어있는 것 같지만 그대로 보이는 팬 등 각 부서에 빅보스를 존경하는 팬이 굉장히 많은 분이라는 것을.  


 물론 나도 반신 반의 했었다.  더구나 내가 함께 일해야 하는 분은 한국에 온 지 20년이 다 되어가시는 은발의 베테랑 경영인.  입사 초기에는  조직개편 전이라 1-2달은 인수인계 겸 전임자에게 묻어갈 곳이 있었는데, 개편 이후 혈혈단신으로 일을 하다 보니 쌓이는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프랑스어로, 영어로, 한국어로 메일을 쓰고 이야기를 하느라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그 와중에 빅보스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홍길동이 조상이셨나 싶을 정도로 파리로, 홍콩으로, 베트남으로, 계속해서 엄청나게 빽빽한 일정으로 출장을 소화하시고, 중요한 일은 꼭 메모해두시고 챙기셨다. 그 많은 업무를 손수 챙기는 분 옆에 있다 보니 덩달아 나도 챙길게 어마어마했다. 한동안 정말 화장실 갈 시간도,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했던 것 같다. 가끔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는데 배가 점점 불러오고 나니 점점 힘에 부쳐오곤 했다. 그래도 빅보스를 보고 이직을 결정한 것이고, 일을 하면 할수록 정말이지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걸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리라 그렇게 일을 했던 것 같다. 4개월 반쯤 지났을 까 이제 좀 적응했다 싶을 때  느닷없이 찾아온 조산기로 병원행이 결정되기 전까지, 내가 이렇게 까지 열심히 해야 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일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속절없이 휴직을 감행하게 되었을 때도 이제 호흡이 맞아가는 것 같았는데, 갑작스레 빅보스를 떠나게 되어 많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음속에 부담감이 남은 채로 휴직기간을 보냈다. 베이비 보스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늘 마음 한편엔 복직 후가 걱정되었으니까.  


입사 첫날만큼이나 긴장하고 시작한 복직 첫날,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 때문에 회사에 출장 일정은 전면 취소되어 출장 관련 업무는 거의 없어졌다. 세상에 걱정하는 일 90%는 일어나지 않는다 했던가. 다행히 이전에 했던 업무가 있어서 그런지,  내 일을 보조해주는 직원도 하나 생겨서 그런지 오히려 휴직 전보다는 업무처리가 수월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언제 떠나 있었냐는 듯이 보스는 나를 더 편하게 대해 주셨고 나는 이전보다 더 잘 챙기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빅보스도 한국에 계시다 보니 한국에서 처리하시는 일도 많아지시고 더불어 빅보스를 보좌하는 나와 다른 직원과 미팅하는 날도 일도 더 많아져서 자연스레 더 가까이서 어떻게 업무를 처리하시는지 볼 기회도 많아졌다.


아침일찍부터 밤 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에도 지치지 않으시고 (나도 그 강행군을 함께 하는데 나는 참 지친다), 습관처럼 '문제는 없고 해결책만 있을 뿐이다'라고 되뇌시는 것부터, 50대에 업계를 바꾸어 부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식견과 전문성, 무엇보다 항상 새로운 걸 도전하시고 찾아내시는 의지와 협상력, 주변 사람들에게 늘 도움을 주시려는 자세, 시간관리, 스트레스 관리 등등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배울 점이 많았다. 물론 가끔 너무 급박하게 일을 지시하시거나 또 바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을 주시기도 하지만,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법. 그리고 배울 점이 훨씬 더 많은 분이기 때문에 곁에서 보좌하는 일이, 사람들이 '레전드'라고 칭하는 분 옆에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이렇게 평일 낮에는 빅보스를, 저녁이랑 주말은 베이비 보스를 모시면서 2020년 하반기가 지나갔다.  나이도 국적도 너무 다른 두 명의 보스지만, 나를 인간적으로 그리고 직업적으로 성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모두 존경할 만한 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두 분 보스 모두 나보다 체력적으로 월등한 분들이셔서 아직도 힘에 많이 부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으니 이왕 겸직(?)하게 된 거 할 수 있는 한 잘해보고 싶다. 어찌 보면 앞으로 계속해서 두 가지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감사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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