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1년 전 그 날,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통증 때문에 차라리 그냥 다시 예전으로 돌이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양수가 터진 것 같아 황급히 출산 가방을 싸서 들어간 병원에서는 양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자꾸 수축이 오고 하니 유도분만을 해보자는 권유로 그렇게 난생처음 분만실에 입성했다.
'유도제'의 효능(?)이 그저 출산을 '유도'해주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한 나는 그렇게 초반 1시간 정도 '할만하군?' 이란 오만한 생각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내 오만한 생각에 놀라 자빠진 시간은 생각보다 아주 빨리 찾아왔다. 2시간쯤 되니, 좀 불편한데?부터 시작해서는 10분 그리고 나중엔 5분이 지나면서 이렇게 아프기 시작하는 건가, 이게 바로 진통이라는 건가 라는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때가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고 뭐고 그냥 콱 혼절해버리고 싶었다. 3시간쯤 지났을 때인가, 남들은 '무통 천국'이라는데 나도 그 천국 좀 보내줬으면 하고 간호사를 불렀는데, 무심하게 내진을 하더니 (진통하는데 내진까지 하면 정말 죽을 맛이다^^) "아직 자궁문이 안 열렸네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좀 있다 다시 올게요." 하고 가버렸다.
하.. 남들은 남편 머리를 쥐어뜯고 한다는데 뭐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후에 내가 친구들에게 전했던 그나마 생생한 통증의 묘사는, 배를 빨래 짜듯 꽉 쥐어짜서 돌린 후에 그 위에 기차가 지나가는 기분. 정도였는데 어찌 되었건 정말 매 초마다 차라리 기절하고 싶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5시간을 달려갈 때 즈음, 자궁문이 열릴 생각도 없고, 이렇게 계속해서 기절에 대한 염원만 늘어가기 전에 빨리 수술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 선생님을 불러서 애원했다.
보통 고통의 시기에 따라, 자연분만은 선불 그리고 제왕절개는 후불이라고 지칭하는데 어쩌다 보니 환불 없는 이중결제족에 속한 나는 수술대에서 나오고 나서 다시 한번 기절 염원에 빠지게 되었다.
난생처음 배를 가르는 수술을 하기도 했지만, 진통하느라 여기저기 잔뜩 굳어버린 근육통은 진통제를 아무리 맞아도 잦아들지가 않았다. 진통제를 2개 달고, 그마저도 통증이 너무 심해서 가능할 때마다 주사를 추가로 맞았는데 이틀 좀 지났을까? 이제 움직여야 한다고 :) 네??
한창 코로나 사태가 시작하던 즈음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장은 아이를 보러 갈 수도 없게 되어서, 병실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그저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 존엄성을 의심하게 하는 여러 가지 처치를 받으며 있다 보니, 내가 뭘 한 건지 여긴 어딘지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곤 했다. 흡사 풍선처럼 여기저기 퉁퉁 부어버린 몸에, 뱃속에 쇠사슬이 가득 찬 기분, 그리고 '움직여야 한다'는 말에 힘겹게 화장실을 갈 때에도 너무 달라진 내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한동안 거울도 못 봤다.
엄마도 자란다
엄마가 된다는 순간은 모르긴 몰라도 너무 감격스럽고 벅차고 뭐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여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막상 내가 아이를 낳은 건지 어쩐 건지 얼떨떨할뿐더러 그저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것 같은 통증이 사라지기만을, 그리고 부디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제야 우리 엄마가 나를 낳고 3일 동안 보러 오지 않았단 말이 이해가 되었다. 참고로 엄마는 36시간 진통 후에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이렇듯 강렬한 출산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전에 내가 품었던 출산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을까. TV나 영화에서는 출산하고 막 울기도 하던데, 난 수술대에서 아이를 보고 나서도 무슨 말을 할 지몰라 아.. 안녕? 하고 말았다.
그냥 모든 게 얼떨떨해서 조리원에서도 한동안 그랬던 것 같다. 이 아이가 내 아이인가, 저 아이도 내 아이 인가 싶고 '301호 봉봉이 엄마'라고 불리던 그때에도 여전히 그랬고, 생각보다 막 너무 예쁘고 너무 소중하고 너무 좋고 라는 기분보다는 그냥 좀 계속 얼떨떨한 기분이 오래갔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모성애라는 것이 막 샘솟는 건 아니구나 아니면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 할 정도로, 난 그저 힘없는 어린 생명에 대한 책임만을 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내가 모성애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아이와 눈을 맞추는 날이 늘어나고 귀를 간지럽히는 옹알이 소리를 들어가며 서서히 '엄마'라는 옷에 자연스러워 져갔다. 기저귀 하나 가는 것도 서툴렀던 내가 이제는 어엿한 '엄마'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된 것도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몸을 움직이고 환한 웃음으로 안기며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빼곡하게 채워주는 아이 덕분에 내가 정말 엄마가 되었구나 실감하게 된다.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구나
지금 생각하니 아이를 낳고 나서 생경했던 그 기분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이를 낳았다는 물리적인 변화만으로 바로 엄마가 '되는'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에게 배우고 세상에서 배우고 또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엄마가'되어가는'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엄마가 되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엄마 명함을 낸 지 1년째, 정말 달라진 게 있다면 나를 바라보는 이 두 눈 빛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 나의 아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되뇌는 점, 그리고 이 작은 생명체가 또 세상에 나아가 뜻을 펼치고 기여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처럼 전에 없던 '사명감'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나의 1년,
서툴고 부족한 엄마 아빠지만, 부모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우리 부부의 첫 1년,
그리고 그 누구보다 우리 집을 가장 따뜻하게 채워주는 우리 봉봉이 첫 번째 생일을 정말 축하하며
엄마 아빠한테 와주어서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우리 아들!
처음 본 그날도 너무 예뻤는데, 지금도 매일매일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나는야 프로 도치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