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보다 신경이 쓰였던 그 무언가
결혼 생활 5년 동안 카톡을 보여달라고 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살면서 연애를 할 때도 상대의 핸드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볼 이유가 애당초 없었다.
그리고 텍스트는 오해의 소지도 있기에 서로 안 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사생활은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서로의 생활이 예측 가능했기 때문에
핸드폰을 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여달라고 하자
남편은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우겨서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이 하루에 보내는 카톡의 양이 너무 많아 하루치 아니 반나절도 볼 수가 없었다.
올려도 올려도 올려도..
하루에 주고받은 양은 끝도 없었고 논문 이야기 학교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 등 내용이
너무 많아서 다 볼 수도 없었지만 남편이 핸드폰을 빼앗아서 길게 볼 시간이 없었다.
이모티콘은 수없이 주고받았고 밥을 먹었느냐 인사나 논문 이야기 학교 이야기
빨리 올려본다고 내용을 정확하게 볼 순 없었지만 대충 본 내용, 약 1분 정도가 끝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논문 등 학교에 필요한 공문서도 하나하나 컴펌을 받았다.
남편은 교수일이 익숙하지 않고 그녀는 임용 전에 다른 곳에서도 연구실에 있으며 타 교수들과
논문을 수없이 썼고 강사를 계속했기에 여러 가지 도움은 받을 순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스타일이 하나하나 다 물어보고 허락받는 스타일이라 그녀에게도 이것저것 물었을 것이다.
그녀가 사모님과 치킨을 먹으라고 기프티콘을 보낸 게 있었고 신랑은 이거 받으면 자기 이혼당한다고
답을 했다. 신랑 나름의 거절 방법이겠거니 했지만, 본인의 핑계가 아닌 와이프 때문에 못 받는다로
보여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기프티콘을 서로 주고받으면 이혼한단 말은 그에게 한 적이 없다.
남에게 '이혼'이란 말을 주고받을 사이면 친한 거 아니냐고 물으니 친하진 않고 그냥 동료일 뿐이고,
또 나를 생각해서 닭선물을 주는 사람을 나쁜 쪽으로 매도하지 말아 달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아니고 나도 그녀를 보면 아마 알 거라고 했지만 그때의 감정으론 만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우린 남편의 주도하에 만남이 이루어졌고 이후 4달 뒤 남편은 집을 나갔다.)
그때의 나는 남편은 왜 나만 이해시키려고 하는지 왜 내 감정을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는지 남편에게
서운하기만 했다.
카톡으로 큰 증거(?)를 발견 한 건 아니었지만 이후에 그는 변한 게 없었다.
말은 미안하다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하면서 회식을 하면 여전히 만취해서 들어오거나 그녀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물론 동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리만치 그냥 동료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문자를 보곤 가입도 하지 않은 학회에서 본인 이름으로 안내 문자가 왔고, 이상하다고 했다.
이후 확인해 봤냐고 물어보니 그녀가 남편 이름으로 학회비를 내고 학회에 가입을 시켰다고 했다.
여전히 둘은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했다.
이후 나와 남편은 다투는 일이 꽤나 생겼다. 나는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남편과 그녀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은 싸우면서 화가 나 나도 이성을 잃으면 학교로 찾아가
그녀를 만날 것이니 정도껏 하라고 했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다음날 그녀에게 찾아가 혹시 우리 와이프가 찾아오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를 했단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뭐가 미안한지 물어보니 그녀 입장에서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단지 일을 같이 하는 동료일 뿐이고 얼굴도 모르는 와이프가 찾아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이냐며 미리 알려줘야 해서 사과를 했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도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고 나 역시 이런 일이 자꾸 생겨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나는 찾아갈 생각이 없었지만, 혹시나 놀랄 그녀를 생각해서 미리 언질을 해주는 그를 보며,
그가 남을 배려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다만 그 배려가 선택적이라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나는 이후에 술을 마시고도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남편에게 화가 나서
한 번 더 카톡을 보자고 했다.
그냥 본 것만 나열하자면.
회식날 1차에 참석하지 않은 그녀에게 어디인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사진을 보냈고 네이버 장소로 2차 장소 위치만 알려도 되지만,
그는 여기 이쁜 곳이라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서 빨리 오라며 카톡을 보냈으며,
3차는 그녀와 함께 우리 집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곳까지 따라갔다.
물론 3차까지 갈 순 있다. 하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학교 교수들만 있는 곳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
그는 병원에서 오래 일을 했지만 병원 사람들과 3차까지 간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학교 교수들은 그가 병원에서 일을 했어도 단대가 같기에 그 사람들과 다 아는 사이다.
남편 말론 그녀가 임용 뒤 오래된 학교 교수들에게 본인의 칭찬을 많이 해서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았던 교수들이 모두 자기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것 같다고 다음에 술을 더 늦게까지 마시자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그녀에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내가 교수가 아니라 그 사회를 모르지만, 오래된 교수들이 임용되어 온 지 1년이 조금 지난 교수의 말에
원래 있던 사람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도 하는지. 내가 모르는 상황도 당연히 있을 거라 이해를 해보고자
노력했지만 쉽진 않았다.
둘은 논문이나 대학원 수업 연구 주제 등 주고받는 내용이 많았다. 또한 그녀가 새벽형 인간이라 11시
전에는 꼭 자던 남편은 그녀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밤늦게도 카톡을 주고받았단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그는 24:50분에 논문 완성본을 보내기도 했고, 함께 쓰는 논문에 그녀의 분량을 그녀가 바빠 마무리를 못해 남편에게 마무리 부탁을 했고 그것도 다 해주고 있었다.
한 번이야 도와줄 수 있지..근데 한번이 아니라는게 팩트이고 이러고도 그는 그녀와는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한다.
둘이 밤에 뭘 먹었는지 서로의 밥상도 사진으로 공유했다. 내가 2번째 카톡을 본 게 6월이었고 10월에
식을 앞둔 사람인데도 다른 남자와 저런 사진을 주고받는 그녀가 나는 신기했다. 내가 너무 유교걸인가??
그녀는 남편에게 저녁에 먹을 것들을 사진으로 보냈고 그도 거기에 화답하며 저녁 식탁을 찍어 보냈으며,
나와 먹은 막걸리 사진을 보내며 그녀가 좋아할 법한 막걸리러며 카톡으로 추천하고 있었다.
나는 몰랐다. 밥상 사진을 찍길래 맛있어서 찍나 했더니 그녀에게 보내는 것인줄은..
그녀는 맥주와 막걸리를 제일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와 좋아하는 주종이 같다.
다른 날은 그녀가 치킨을 먹는다고 그에게 사진을 보냈으며, 내가 나간 주말 그는 그녀에게 뭐 하냐 밥은 먹었냐는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다른 날 새벽은 완성된 논문 중 남편의 분량을 보내니 그녀는 지금 학회 갔다가 오는 기차 안이라며 기차
안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도 했다.
나는 주변에 정말 객관적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지.
다른 와이프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지.
남편은 내가 신경 쓴다는 걸 5월에 알았고, 앞전에도 카톡으로 다퉜으며 6월에 주고받은 문자가 이젠 사진으류 발전을 했지만 그는 그녀와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한다.
이게 정말 나한테 미안한 사람의 행동인지, 아내가 싫은 걸 몰랐다는 말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지 나는 정말 납득하기 힘들었다.
말은 나만 사랑하고 나와 잘 살고 싶다고 하는데, 말에 대한 진심을 그의 행동에서는 느낄 수가 없었다.
남편 학교에 나이가 조금 더 어린 연구를 정말 많이 하는 교수가 있다.
남편과 같이 모임을 하는 4명 중 1명이고 정말 많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며, 그녀와도 논문을 썼고
일도 같이 한다. 4명이 술자리를 해도 그는 무조건 10시 30분이면 집으로 간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고, 나에게 그런 스타일의 교수와 결혼을 했었어야 한단다.
나는 그래도 최대한 남편을 이해하고 싶었고 일은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사진을 주고받는 건
하지 마라고 하고 나를 배려해 달라고 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회사 동료와 카톡으로 사진을 주고받고 새벽에 카톡을 보내며
내가 만취해 동료가 우리 집에 부축해서 데려다주고 하면 괜찮겠냐고 물으니
남편은 아직 본인이 당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했고, 나에게 한 번 해보라고 했다.
당해보면 이야길 해주겠다나..?
내가 알던 그가 맞는지.
어째 어째 감정을 다스리며 하루하루 보내다가 7월 그날
남편의 그 4명 모임날 결국 문제는 터져버렸고.
일어날 일들은 일어난다고
이게 우리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