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순례자'가 뭐길래

스페인에서의 교감-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by 오떡순


남편은 글 적는 걸 좋아한다.

내가 여기 작가로 도전한 것도

그의 영향이 컸고 덕분에 글을 적으며

집중을 하다 보니 잡생각이 줄긴 했다.



남편의 취미와 내 취미는 다르다.

나는 우리의 결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어쩌면 책을 좋아하고 고전에 견문이 넓은

그녀가 더 신경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언젠가부터 브런치에 이런 글들을 적었다.


- 아내는 잔소리를 하는 여느 다른 여자와 다를 바가 없다.

- 대학 때부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그것만을 위한 학당을 만들고 싶다.

- 학교에서의 부조리함, 다른 교수들의 그녀에 대한 질투

- 그녀에 대한 동질감. 안쓰러움.

- 싸우고 난 뒤 웃으며 손을 내미는 내가 치가 떨리게 싫음과 사랑의 존재 여부 등



카톡 프사도 변경하지 않던 사람이

노래를 하루 걸러 하루 바꾸는 것도 기묘했다.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을 좋아하던 그가

나와 연애 때도 변경하지 않던.

나와 싸운 그 시간 동안

사랑노래로 카톡 대문을 채우기 시작했다.




남편은 예전에 류시화의 시를 좋아했지만

언젠가부터 상업적인 글을 적는 것 같아서

읽기 싫다고 했었다.

사람마다 기준과 성향은 다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언젠가부터 류시화의 책을 빌려오더니

가방에서 꺼내지 않고 나 몰래 읽곤 했다.


인문고전에 관련된 책도 많이 빌려왔고

언제 저렇게 관심이 많았나 싶을 만큼 몰두해서 읽었다.



그는 종종 학교 도서관에서 내 책을 빌려다 주었고,

어떤 땐 바쁜 그녀를 대신해 책을 반납해 준다거나

빌려다 준다거나 했다.





24년 7월 기말이 끝나고 방학 시작과 함께

그녀가 스페인으로 휴가를 갔다고 했다.


그는 활자로 된 책을 좋아했고

전자책은 거의 읽지 않았는데


10시만 되면 자는 사람이

그날은 침대에서 12시가 넘도록 전자책을 읽고 있었다.


원래 하나에 꽂히면 해야 하는 성격이라

그러려니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그 책은 왜 그리 신경이 쓰였는지..


무슨 책인지 물었고

먼저 읽는 책 제목을 이야기해 주던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그냥 책이라고 했다.


무슨 책이냐 다시 물어보니

파울로 코엘료라고 했고

연금술사는 아닌 것 같아

책 제목을 물었다.


대답을 바로 하지 않고 뜸을 들이길래

한번 더 물어보니

순례자라고 했다.


하필 스페인으로 휴가를 간 사람이 떠올랐고

순간 짜증이 났다.


그 책은 그녀가 추천했냐니

무슨 소리냐~

이제 책도 마음대로 읽지 못하냐~

책으로도 사람을 의심하냐며

이 정도면 의부증이라고 화를 냈다.


같은 모임에 A라는 교수는 그녀와 여행지에서 서로 사진도 주고받고,

둘이서 1박 2일로 학회도 가는데 그런 사람들은 다 바람이냐고 했다.


나는 바람이란 말을 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의심을 안 한 건 아니었다.


또 같은 말의 반복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다른 교수들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다.'



10월에 결혼을 앞둔 사람이

8시간이나 시차가 나는 곳에서 굳이 직장동료와

사진을 주고받을 필요가 있는지.??!!



그에게 물었다.

내가 만약 그런 동료가 있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냐니

그는 안 당해봐서 모르겠지만, 당신도 직장 동료와 그렇게 지내도 되고

그때 돼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말해주겠다고 했다.ㅎㅎㅎㅎ

=> 유머감각이 대단한 놈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너무 많지만 그건 다른 글에서 적도록 해야겠다.. 휴

(열받아...!!)



이제 내가 그들을 이해할 필요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운영해 오던

아카데미 인스타를 찾아봤다.


스페인 여행 사진들과

파울로 코엘료, 류시화의 책을 인용한 글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그가 그녀의 아카데미 인스타

주소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자.


나는 그가 그녀와 단순히 친한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집을 나간 후

몇 달이 지나고 인스타를 보는데 친추가 떴고

눈에 익은 사진이어서 들어가 보니

그녀의 계정이었다.


아카데미 인스타와 동일한 사진도 있었지만

그가 날 의심병 환자로 만든

순례자라는 책은 그녀의 인스타에 아주 우연히도

하필 그가 책을 읽던 그 날짜에 스페인에서

업데이트를 했더랬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는 설정이다.


그녀의 팔로워와 팔로잉은 2명뿐이었는데

학생 1명과 나머지 1명은 남편이었다.


인스타를 하는 나를 그렇게

이해 안된다곤 하더니.


그는 비공개 계정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지

나와도 맞팔이 안된 사람이

그녀와는 맞팔이었다.



그녀가 말하던 4명의 모임에

2명의 친한 교수도 인스타 아이디가 있고

심지어 1명은 활발히 활동도 하고 있다.

그들과는 팔로우를 하지 않았던데

왜인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왜 그녀의 남편과는 맞팔이 아닐까?

인스타를 하지 않나??

나는 헛웃음만 나왔다.



그는 나가기 전까지도 나에게 그녀와는 친하지 않다

억울하다 이야기했다.

나간 뒤에도 자기 여동생에게 억울하다 피해자는 본인이다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억울한 게 많았던 그는 집을 나간 뒤

바로 그녀가 운영하는 아카데미 수업을 들었고

그녀는 아카데미에 사진을 업데이트까지 해두었다.



아주 억울했지만 아주 당당했던 그는

아내를 버리고 집을 나갔고

원하던 것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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