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가지고 싶으면 정자은행에서 정자 받아.
내가 이혼을 말한 뒤
그는 작년 가을 겨울 동안
이혼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밥을 해줘도
집 못 나가게 하려고 잘해주냐
얼굴에 팩을 붙여줘도
손을 때리며 치워라
집 못 나가게 하려고 이러냐
왜 잘해주냐고 했다.
억울했다.
4년의 시간 동안
생활비 달라고 보챈 적 없고
뭘 바란 적도 없는 나에게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 밥을 차리고
과일을 깎아주고 신발 닦아주던..
화장품이고 옷이고 전부 다 사주고 준비해 주던
나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싶었다.
심지어 발에 앉은 각질도 밀어주던 나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의심하는 나를 보며
그 역시 같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정적이었고
나만 봐왔던 그에게
우리 와이프는 어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나
했을 것이다.
8월 말
술을 마시고 그녀의 걱정에 빠져 있던 그와
또 다투고 난 뒤
병원 정기 검진 날이 있었다.
수치가 중요한 날이었고
정상으로 아직 돌아오진 못한 수치였다.
잘 기억을 못 하는 그에게 병원에 가는 날인걸
며칠 전에 이야기했었고,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전화를 했지만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의 걱정은 되지만
내 걱정은 되지 않는..
싸웠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했다고 하는
그에게 내 마음속에 분노게이지는
점점 더 차오르고 있었던 것 같다.
9월 초
그가 새벽에 운동을 나간 뒤
서랍에서 물건을 꺼내려고
그의 가방을 옆으로 밀었는데
많이 묵직했다.
4년 동안 그의 가방에 손을 댄 적도
아니 열어보고 싶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가방을 열어 보았다.
모두 류시화의 책이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났고.
순간의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분노가 폭발했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부터 퍼부었다.
운동을 하고 들어온
그는 왜 그러냐고 했고
나는 그녀의 인스타에 본 글에 대해
말하기 싫었다.
왜 갑자기 류시화냐고 화를 내는
나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미친또라이 같았겠지.
저녁에 다시 한번 큰 싸움으로
번졌고 그는 이혼을 하자고 했고
따지는 나를 보며,
'화를 내는 너의 그 눈빛이
너희 아빠랑 똑같다'는 표현을 썼다.
나는 가족에 대한 아픔이 있다.
그걸 아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내 비밀이 나에게 칼이 되어 돌아왔다.
믿고 말했던 나의 비밀이
가슴 한켠에 있던 가슴 아픈 기억이
다시금 나를 후벼 팠다.
그는 정확히 말했다.
나는 그녀와 일을 해야 하고 당장 그만둘 수도 없고
일을 하다 보면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같이 학회를 갈 수도 있고,
그녀와 함께 인문학 관련 수업도 만들 계획이다.
그럼 내가 괜찮겠냐고 물었다.
내가 괜찮지 않다면 이혼을 하자고.
그는 결혼 생활 동안 나한테 병원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밥먹듯이 했었다.
그랬던 그는 지금은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다니고 싶게 만들어준 그녀에게
고마워하라고 했다.
그는 다음날 우리가 사귈 때부터
해두었던 카톡 프사의 글을
다 지웠고, 인문학 관련 책을 올리거나
사랑 음악으로 프사를 지속적으로 변경했다.
언제 이혼을 해줄 건지도 물었다.
그런 그를 보자니
나 역시도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혼이 싫은 건지
감정이 남은 건지
저 사람에게 오기를 부리는 건지.
보직이 시작된 새 학기부터는
본인이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내 불안과 의심 또한 커졌다.
9월 학회는 애초의 계획대로 함께 갔다.
그가 먼저 갔고 나는 일이 끝나고 저녁에 출발했다.
학회 예약도 일화가 있는데,
그가 저녁에 컴퓨터를 켜고 가만히 앉아 있길래
뭐하는지 물어보니 학회 등록을 해야 한다기에
빨리 하고 자자고 하니 그녀와 12시에 같이 접속해서
등록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시간은 또 왜 12시냐니 그녀가 새벽형 인간이라나 ㅋㅋㅋ
국제학술대회는 처음이라 잘 몰라서 같이 하기로 했단다.
그래 그래라~하고 말았다.
그녀는 학회 전문가니깐!!
그는 학회 동안 본인은 일을 해야 하니
나 혼자 하루 노는 건 괜찮은지 물었고
나는 혼자 여행도 좋은 추억일 것 같아
렌트를 해두었었다.
그는 2박 3일 동안 이틀을 새벽 1시가 넘어 올라왔다.
첫날에 학장님이 내가 온 걸 알고
불러라고 했나 보다.
남편은 나에게 '학장님이 내려오라고 하는데
자기가 오고 싶으면 와'라고 했다.
어때 내려올래가 아닌,
네가 오고 싶으면 오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미 씻고 누웠기도 했지만
또 어떤 걸로 내 핑계를 대려고 저러나 싶고
그가 술을 먹고 다시 정신줄을 놓을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워 참석하지 않았다.
둘째 날 역시 사람들과 다 같이 밥을 먹고
학생들에게 맥주를 사줘야 한다고
학과장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올라왔고
나는 저녁에는 할 게 없어서
호텔 주변을 뛰었다.
같이 온 다른 교수를 마주쳤지만 아는 척을 하진 않았다.
그는 와이프와 산책 중이었다.
남편은 학회 때에도 그녀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는 호텔방에 올라 와 있고
그녀에게 전화가 오면 주인 기다리던 강아지처럼
해맑은 미소로 바로 뛰어 내려갔다.
차라리 나한테 티나 내지 말지.
10월 셋째 주 목요일
그들의 모임이 있었다.
7월 이후 처음 있는 그들의 모임이다.
물론 중간중간 그녀와 학교일로
종종 술 마시고 늦긴 했다.
나 같으면 이번 모임은 참석 안 할 것 같았는데
어쨌든 그는 참석했고
새벽 1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고
그는 소파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그의 가방이 조금 열려있었고
서점 봉투가 보였다.
열어보니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라는 책이었고
나를 주려고 샀나 생각했다.
가방 안엔 스티커와 캔맥주도 들어 있었다.
그가 출근했고 책은 꺼내놓지 않았다.
출근한 그에게 물어보니
왜 남의 가방을 뒤져보냐고 했고
(이미 우리는 남이었다)
누가준거냐고 물어보니
그녀가 모임에 오며
책을 사서 모두에게 줬으며
한 권씩 골라 읽은 뒤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자고 해서 받았다고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그 책은 토론을 할만한 내용이 아니었고
마음을 위로하는 책이다.
내가 이상한지 몰라도,
7월에 그런 일이 있었고 그도 그녀도 알고 있다.
내가 오해를 해서 이혼의 위기란 것을.
굳이 책 선물을 하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선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나는 모든 게 거슬리고 싫었다.
며칠 뒤 그는 그 책의 한 구절을 사진을 찍어
카톡 프사에 올려두었다.
그날 모임에서 한 교수가 제주에서
나를 봤다고 이야길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교수의 임신 소식도
알려주었다.
나도 병원에 가서 인공수정을 하자는
이야길 이전에 한 적이 있어서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우리가 혹시 아이를 가진다면
사이가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그는 이야기했다.
'임신이 하고 싶으면 정자은행 가서
정자 받아서 임신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니
사실인데 뭐가 그게 기분이 나쁜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나 같으면 이런 말까지 하는 사람
이혼해 주겠다 자존심 상해서'라고 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이렇게 내가 싫어서 저런 입에 담지 못할 말도 하는 사람인데..
결혼하고 몇 년을 사건 사고로 힘들어하던 그의 옆에서
응원 아닌 응원을 했던 나인데.
살면서 단 한 번도 송사에 얽힐 일이 없던 내가
결혼 후에 경찰서며 변호사 사무소며
법무사며 같이 쫓아다니며
소송도 해보고 이런저런 일을 함께 하며
여러 가지 일들을 이겨냈던 나인데.
내 가슴에 대못을 아주 팡팡 박고 있었다.
후에 그의 핸드폰이 켜져 있어서 본 적이 있었다.
그는 퇴근길 아니 술을 마신 후 집으로 오는 길에
항상 그녀와 짧게나마 통화를 했고,
다 같이 모임이 있었던 그날도 아주 해맑게
웃으며 그녀와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전달받아 저장을 해두었다.
내가 놔주기 전에 그는 자기 손으로 집에 있는
본인의 모든 짐을 챙겨 그의 발로 집을 나갔다.
(내가 사준 옷과 신발 그릇도 다 챙겨서 나갔다.
심지어 내 옷도 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들고나갔다.)
아 쓰레기는 놔두고 나갔네..ㅎ
우리는 아직 서류 정리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