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물건은 다 가져갈게

자기야 니 거 내 거가 어딨어~

by 오떡순

항상 본인 돈이 내 돈이라 말은(?)했던 그였다.


하지만, 나갈 땐 틀렸다.

생활비에 쓰라고 준 카드지만 사용할 때마다

연락이 와서 잘 사용하지 않던 카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줬던 카드를 당장 돌려달라며 받아 갔고 관리비 가스비 등 전부 자동이체 해지를 하곤 내 앞으로 다 돌렸다.

뭐 당연한 수순일 수는 있지만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었고 나는 그 결정에 따라야만 하는 아주 불공평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내가 이혼 서류 내밀면 그가 어떻게 나올지 뻔했다.


‘자기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고, 서류도 먼저 가져왔으니

나는 자기가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그는 내가 사준 양말 하나 속옷 하나까지 다 챙겼다.


아토피성 피부를 가진 그가

몸을 긁고 사타구니를 긁는 게 안쓰러웠다.


그래서 싼 속옷만 입던 그에게

백화점에 가서 속옷 재질 다 봐가며 계절마다

사다 줬었다.


하나씩 다 챙겨주는 내가 너무 누나 같고 엄마 같고

여자 같지 않아서 싫었는진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 그런 게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그가. 팬티 하나를 찾는다.

검은색 망사는 아니지만 여름용 속옷이 있었는데

그게 안 보인다며 찾고 있었다.

그렇게 기억력이 좋았나? 더 찾아주기 싫었다.


옷에 관심이 없던 그에게 나는 좋은 옷만 골라

사주었었는데 모조리 다 챙기는 그를 보고 있자니 감정이 많이 복잡했다.


정말 잠깐 떨어질 생각이 아니었구나..


개등신이었던 나는 그렇게 싸우고 난 뒤에도 가을 옷을 사 와서 입혔다.


병신 같은 년.


옷을 챙기던 그가 내 패딩 하나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막 입는 패딩은(막입었지만 그래도 70만원 짜리였다)나랑 같이 입던 터라

처녀 때부터 입던 두꺼운 폴로 패딩이 있었는데, 혹시 내가 안 입으면 달라고 했다.


아끼던 옷이었지만 워낙 옷이 없던 그가 달라는 말에 가져가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까지 개싸움은 피하고 싶었고, 내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안쓰러운 마음이 남아있었다.


PC만 3대였던 그에게 하나만 놔두고 가라니 싫다고 했고 반반 보태서 산 노트북도 싹 챙겨 넣었다.

같이 쓰자던 고프로도 찾아보니 들고 나갔다 ㅋㅋ


우리 회사에서 가져온 모니터도 지가 가져가면 안 되냐 물었지만 PC 하나도 아까워서 주기 싫어했던

그가 미워서 나도 베풀지 않았다.

((덕분에 새삥 노트북을 내 돈으로 사긴 했다.))


소주잔이나 물병도 안 쓰는 걸 달라기에 챙겨줬고

수저랑 전부 한 세트만 챙겨주니 두 세트를 챙겨달란다.

왜냐고 물으니 한 세트는 외롭단다 ㅎ



집을 나가면

나는 정말 자기 물건만 싹 들고 갈 것이라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내가 사준 옷가지와 속옷까지 샴푸 로션 하나 까지도 싹 챙겨나갈 줄 몰랐고

한 세트는 외로우니 두 세트를 달라는 그도 참 어지간하다 싶었다.


샴푸 린스 바디 화장지 치약 칫솔 세제까지 전부 챙겨주었다.


내가 병신이라서 나가는 그를 챙겨준 건 아니었다.

나도 불편했던 마음이 있었기에 그를 이해할 수도 있었고, 혹시나 잠깐 떨어져 지내면 좋아지지 않을까.

내 생각이 나지 않을까..

착각에 착각을 더했다.


그에게 우리 사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알아서 버리라고 했다ㅋㅋㅋㅋ


내가 어떻게 버리냐니 그걸 왜 못하냐며!!

그냥 다 버리면 되지~라고 했다.


나가기 전 집구석구석 사진을 찍는 그를

보니 두 번 다시 여긴 오지 않겠구나 싶었다.



이 집에 가전을 그의 돈으로 다 채워서 그런지 많이 아까워했지만 인심 쓰듯 나보고 다 쓰라고 했다.


아... 그래서 재산분할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다 생각했나 보다….

나가기 전에 나는 병신똘갱이처럼 카레를 만들어서 같이 먹었고 나가는 그와 포옹을 했다ㅋㅋㅋㅋ(미친년)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붙들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냐 물었고

그는 무슨 마지막이냐고 했다.


용달 기사님이 오셨고 그는 웃으면서 아저씨와 대화를 하며 나갔다.




신혼이란 단꿈에 젖어 이 집 바닥에 앉아

중국음식을 시켜 먹고 발품 팔아 구석구석을 채웠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그의 흔적은 이제 없다. 언제 내가 결혼이란 걸 하고 여기서 둘이 살았나 싶기도 하다.


그가 집을 떠난 날 나는 짐을 가지고 나가는 그를 보기 힘들어 나갔다가 왔고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오는데..

문을 차마 열지 못했다.


불 꺼진 집에 놓인 우리 사진을 보는데, 현실 같지 않고 꿈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사진을 치우는 데까지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혹시나 혹시나 그가 돌아올까 봐.


현관에 서서 혼자 꺼이꺼이 소리 내 참 많이 울었다.


가슴이 너무 저려 목까지 저렸고

눈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쉴 새 없이 눈물이 얼굴과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내 성격은 이거밖에 안되는지

내 성격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건지...


내 주제에 저런 남편이면 감지덕지해야는데

꼴값을 떤 건지..

그날의 내 기분은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몇 달을 그가 없는 집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우리의 5년이란 시간이 그가 움직이던 그 동선이

함께 앉아 밥을 먹고 티비를 보고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꿈꾸었던 따뜻했던 집이 현실 같지 않았다.


그가 웃으며 현관문을 딸랑이며 들어올 것 같았다.


나는 지난 6개월을 그와 지냈던 안방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했고 침대에 누울 수가 없었다.


힘들다가도 열심히 업데이트되는 그의 프사를 보고 있자니 나도 잘~살고 싶었고, 살기 위해 잊기 위해 많은 것들을 했다.


어릴 때도 안 해 본 아르바이트도 했고, 점집도 미친 듯이 다녔고, 도서관, 학원, 심리 상담.. 그리고 마음이 아파서 가는 병원도 가보았다.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고 나에게 문제가 있다면 변화시키고 싶었고, 긍정적인 마인드도 가지고 싶었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그 말도 듣고 싶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자꾸 확인을 받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었다.


나는 왜 예전부터 어떤 계기가 있어야지만 나를 돌아보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일까?


순간적인 감정을 왜 이성적으로 대하지를 못하는 것일까?




주말이 되면 시간이 너무 많았고

외롭다는 생각도 점점 하게 되었다.


그는 운동도 하고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뭘 하고 있으며 왜 힘들어하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했던 백화점도 가기 싫었다.

행복한 가족들의 웃음이 나만 가지지 못하는 꿈 같이 느껴졌다. 마트를 가도 백화점을 가도 카페를 가도

행복한 가족들 연인들이 먼저 보인다.


행복한 그 웃음이 여전히 부럽지만 나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부분에 욕심내지 않기..!!


그렇게 그는 자유를 찾아 나에게서 해방이 되었고

나는 의도치 않는 외로움과 함께 사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프사 업데이트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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