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후 그의 카톡 프로필은 그녀가 포함된 술자리의 '짠'사진이었다.
작년 이맘때 왜 그렇게 울었었나
왜 눈물이 멈추질 않았었나
눈에 살이 짓무를 때까지
매일 밤낮을 울었다.
이렇게 울 수 있나 할 만큼 눈물이 줄줄줄 흘렀다.
이미 사랑이 식어버린 그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는 나를 보며
그도 많이 지쳤을 것이다.
그의 눈에 내가 없다는 것을 알고
놓아주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걸 알았음에도 바로
놓아지지 않았다.
내가 그가 싫다고 했다면
그는 바로 포기하고 돌아선다고 했다.
그래.. 그게 맞지.
자존심 때문이라도 나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나란 사람은 그처럼 포기가 빠르지 않았다.
7월에 그날 내 감정은
이혼에 대한 의사가 분명 있었다.
반면, 그에게 나를 좀 봐달라는 신호 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집을 나가고
바로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내편이 아니었다.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술을 먹고 한 말과 행동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지만
그때의 그도 그이고,
술에 취한 그날도 그의 생각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한결같이 그녀의 편만 들었다.
그에게 이상한 건 나였고
그녀의 행동에는 모든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이상하리만큼 화를 냈고
그만한 이유가 있노라 편만 들었다.
그에게 나는 이해 못 할 존재였지만
그녀와의 라포형성이 어디까지 된 건진 몰라도
그녀의 행동에는 항상.. 이유가 있었고
그는 언제나 이해했다.
나에게는 미안하지 않았던 그는
내가 그녀를 찾아갈까 봐
그녀에게 폐를 끼칠까 봐
그녀에게는 미안하다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먼저 사과도 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좋았던 건
나를 지지해 줄 내 편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면 옆에서
내편을 들어줄 사람
나를 칭찬해 주고
나만 이쁘다고 해주고
나를 지지해 주는 그런 사람이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우리의 스위트홈이 생겨서
정말 그만 있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친구를 좋아했던 나는
그와 노는 게 제일 좋았고
재미있었다.
내 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다 괜찮다
하는 나를 보며
무슨 일이 생겨도 분명 내가 다 괜찮다
할 것이라 생각했을 거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남편의 지지와 믿음
그리고 그가 필요한 사람이
그녀라는 것이.
우리 집은 많이 보수적이었고
아빠를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갔다.
아빠는 칭찬보다는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이 많았고, 남들과의 비교도 많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했고
항상 내가 가진 점보다 다른 사람이 가진 부분을
부러워했다.
유년시절 칭찬 보단 지적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남들이 나를 필요로 하거나
내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에
집착했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기쁨이 되는 존재라는 것이 기뻤다.
그게 나의 가치라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내 본연의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식적인 모습이 많았던 것 같다.
남들이고 가족이고 지인이게
잘 보이고 싶었고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남편에게 항상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그가 마음이 편했으면 했고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되는.
남들이 나에게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그도 좋은 아내를 두었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랑에 대한 자격지심도 컸다.
항상 노력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한심하게 보이면 안 된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신랑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지지받고 기댄다고 생각하니
그가 떠날까 봐 두려웠고 불안했고
나를 버릴까 봐 무서웠다.
술을 마신 그는
예전 아빠의 모습과 비슷했다.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은 귀 기울여 들었으며
외부 사람들은 존중했지만
가족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았다.
나는 밤마다 술을 마시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아빠 때문에 유년시절이
너무 많이 힘들었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7월의 그날 남편의 그 눈빛과
그 말투와 나를 밀어내는 그 모습에
어릴 때 내가 느꼈던 아픔이 고스란히
되살아났고
내가 너무너무 불쌍했다.
하늘이 원망스러울만큼...
내가 전생이던 현생이던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평생을 마음 조리며 살아야 하는지
왜 결혼을 해서도 나는
남편에게도 이런 취급을 받는지.
내 존재가 의심되었다.
내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했고
자기 연민에 듬뿍 빠졌던 것 같다.
남편에게도 울면서 말했었다.
물론 저 이야긴 하지 않았지만
내 자격지심에 불안감이 심했다고 했지만
남편은 내가 이 상황을 모면하려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추운 겨울에 집을 떠났고
나는 그의 옆에서 짐까지 챙겨주었다.
솔직한 마음은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혹시나 막상 나가보면 마음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함부로 행동하지 말자, 후회할 짓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가 집을 나간 후 5일째 되는 날
그의 카톡 프사 사진이 업데이트되었다.
다 같이 술잔을 부딪히는 사진이었다.
그녀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물론 손만 올렸지만
7월 그날 그녀가 내 손을 잡고
15분가량 이야기를 한 덕분에(?) 그녀의 손만 볼 수 있어서
사진을 보고 바로 알아챘다.
그의 사진첩에는 유난히
소주잔 와인잔 맥주잔 커피잔 병등 '짠'을 하는 사진이
많길래, 원래 그런 사진을 찍지 않던 사람이라
물어보니 그녀가 술잔으로 다 같이 치얼스~~ 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생일이었고, 우리의 결혼 기념이 있는 그 날짜에
그는 그 사진을 올렸다.
아무리 끝난 사이라 생각하고
집을 나갔지만 그래도 부부였고
서류 정리도 남았는데,
배려라곤 개미 똥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날도 참 많이 울었다.
내 눈물샘이 말라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