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대에게 어떤 존재이길 바라는 걸까.?

타인에게 인정받는 존재여만 하는 것일까.

by 오떡순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객관적으로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도 잘 몰랐었고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도 나에 대해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본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아님 살아가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변화가 되던 아니던

시도를 하며 스스로를 알아가고 맞추는 것일까?




내가 남편이 좋았던 이유는 그는 본인이 가진 것에 비해 겸손했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나를 높게 봐주었고,

인정해 주었고, 나에게 기대는 그가 느껴졌고

그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의 기댐이 마냥 싫지 않았으며

그만큼 그에게 내가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칭찬을 많이 받지 못했다.

A를 잘했다면 A에 대한 칭찬보다는 이젠 B를 잘해라는 이야길 듣거나

더 잘하는 주변사람에 대한 이야길 들었다.

그래서 나는 칭찬도 받고 싶었고 도움도 되고 싶었으며,

잘한다는 인정이 받고 싶어서 보란 듯이 더 착하게

보란 듯이 더 애써 잘하려고 했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아직 부족하다.

더 잘해야 한다. 더 착해야 한다. 더 친절해야 한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스스로 채찍질을 수 없이 했다.


어떤 결과가 있어야 하고 그 결과가 있어야지만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내는 결과는 많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하나에 대한 완성도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여러 가지를 하는 나에게 만족을 했던 것 같고

보여주기 위한 삶도 있었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산다.

나 이렇게 뭘 많이 배운다.

나는 끊임없이 행동한다 등등


부모님한테도 어릴 때부터 잘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모든 걸 눈치껏 잘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관계나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상대방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아닌지가 중요했고,

당장 눈에 보이는 주변 사람의 숫자에 연연하며

그 관계가 건강하고 옳은 관계이며

내가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주변에 의해 내가 만들어졌고,

주변에 의해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판단했다.

사람들이 나를 찾기보단 내가 사람을 찾기 바빴다.


내가 가진 내면을 보는 게 아니라 가식으로 만들어진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에 익숙해졌고,

그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더 착하게 굴었다.




나는 주변에 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많지 않다.


베프는 어떤 친구일까.

나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친구?

친구의 행복과 성공을 무조건적으로

빌어줄 수 있는 친구?

그렇다면 글쎄.

어려운 것 같다.


신랑이 예전에 힘들면 친구들한테

자기한테 하듯이 이야길 해라고 했다.

그렇게 말을 못 하는 것도 어쩌면 내 성격에

문제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내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


모든 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생각이 있고

혹시나 나의 힘든 점을 말하면

다른 쪽에서 가십으로 말해질까 봐

무서웠고, 믿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친한 친구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긴 하지만

그녀들의 입에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혹시 내 이야기도 주변에 전해질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물론 내가 힘이 들 땐 그 힘듦에

스스로 이기질 못해서 주변에 이야길 한 뒤

항상 후회를 하곤 했다.


예전에 연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남편은 틀렸다. 이상하게 너무 편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너무 힘든 사람으로 보이고 싶진 않아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래도 상대방에게 편견 없이

내 이야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편했다.


그이 남편의 편함에 내 마음도

평온이 오는 것 같았다.


어릴 땐 집에서 어떤 이야길 해도

분위기를 살펴야 했고, 아빠의 분위기에 집안 공기는

시시때때로 변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시간

그 공기 자체가 편했고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이야길 하곤 했다.


그도 나에게 그의 모든 것을 이야기했는데,

그의 공허함과 슬픔에 감정 이입이 되어

그가 편했으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고

나는 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울한 그가 나로 인해 기쁨을 찾고 행복해지길,

너무 큰 기대를 했고 그가 나로 인해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관심만 컸었던 것 같다.


그냥 나만 행복하면 되는데

꼭 상대에게 어떤 존재의 가치이길 바랬다.


그가 나에게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그렇게 되리라 다짐했다.



나는 그가 나에게 기대는 모습으로

내 가치를 만들어 갔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에 행복했고

'나뿐이지? 나 같은 와이프 없지?'라는 생각을 하길 바랐다.


입는 거 신는 거에 관심이 없던 그인데,

내가 사준 옷을 입고 귀엽게 웃는 모습을 볼 때면

그도 행복한 것 같아 보여 좋았고

그도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만 있으면 되고

나로 인해 살아간다는 사람에게

업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 나타났단 말에,

평소에 나에겐 잘 보이려 하지도 않고

정신적으로 의지가 된다는 말을 안 했던 사람인데

뭔가 잘 보이려고 하고 그녀에게 의지를 하는 그를 보며

어릴 적 느꼈던 불안감이 나도 모르게 되살아난 것 같다.


그로 인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 같았는데

그에게 다른 가치로운 존재가 생겼으니

이제 내 자리는 없고 내 가치가 박살이 났다고 생각했다.


어떤 감정으로 내가 힘든 건지 내가 예민한 것인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감정이 폭발하는지

모든 것을 그의 탓으로만 생각했다.




그의 옆에 도움을 주고 의지가 되는 사람은 나이고,

그가 나를 봐줘야 하는데

이젠 내가 하고 싶은 걸 알아서 하라고 하는 그를 보며

그의 작은 말하나 행동 하나에도

나는 내 가치가 흔들렸고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음을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다.


그도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


난 내가 왜 그렇게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고

불안해했는지

뭐가 그렇게 조급하고 슬펐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람으로서 부인으로서 인격적으로

난 내 가치를 스스로 더 크게 무너트렸고,

존재감을 잃었다.


나는 너로 인해 행복해 고마워

이런 말을 거름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었음을

내 나이 40이 넘어서 깨달았다니.



지난 1년 동안 자기 연민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나는 불쌍해

나는 부족해

남편이 오죽하면 집을 나갔을까??


오만가지의 나쁜 생각들에

나는 집어삼켜졌고,

스스로 벌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하며 살아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진

그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고

정말 의지를 많이 했고 나는 행복했었다.

사실은 사실이고 과거의 시간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죽음도 생각했고

내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을 많이 했지만,

힘든 일이 생기니 막상 더 잘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았던 나에게 주변에서의 칭찬

좋은 말들을 이제 작은 것이라도 잘 주워 들어서

자격지심이 가득했던 어두운 내 마음에 따뜻함을 주고 싶다.




나는 내면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다.

인생은 혼자가 아니고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억지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날 끼워 맞춰

사는 건 내려놓고 싶다.


이 세상 이혼녀로 살아간다는 게 험난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고

차근차근 살아나가다 보면 아픔과 상처가 지금보다는 아물어질 거니깐.


40 중반이 되어서야 나를 알고 깨달음에 늦었지만

그래도 잘했노라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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