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학자다움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난주던가? 유퀴즈에 출연한 프린스턴대 수학과 허준이 교수에게 감명과 공감과 반성과 약간의 시샘을 느꼈다.
한 사람의 학자로서 그는 충분히 자기 충족적인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요인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했겠지만,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구나라는 감명을 받았다.
더불어 수학을 자신의 학문 세계로 선택할 수 있었던 그가 부럽다. 번잡한 인간 삶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경영학자인 나는 그가 몰입한 추상적 세계에 머무를 여유를 갖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핑계에 불과하다. 인정한다. 관건은 개인적 품성과 태도와 자질과 의지다. 그는 그런 면에서 충분히 나를 부럽게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그가 학자로서 존경스러울 만큼 완성도 있는 학자의 품성을 가진 것 같아 더욱 그러했다.
돌아보니 나도 학자로서의 길을 택하고 20여 년을 살았다. 그런데, 오롯이 학자였는가 생각하면 부끄러운 답만 나온다. 학자이기보다 나는 그냥 생활인이었다. 연구하는 대상에서 의연하게 자신을 분리시킨 학자이지 못했고, 그들처럼 삶에 매여 허덕였다. 그런 내가 어찌 인간의 삶을 꿰뚫어 보는 학자였다 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개미를 연구했더라면, 개미의 생에서 얻는 교훈이라도 찾았으련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엉키고 설켜 그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저 아주 약간 고상한 언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진 것 외 내가 내 연구 대상과 무엇이 다를 수 있었던가?
늦었다 생각할 때는 진짜 늦었다고 하지만, 늦었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연구대상과 분리되지 않아도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이라도 찾는다면, 이 인생 학자로 살다 간 것의 의미는 하나 남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