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삶을 세어보다

by OTXP

나이 먹으니 가는 시간을 세는 일이 일상이다. 개인적으로 다사나단했던 2025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새 천년을 환호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1세기가 1/4가 지나간다. 그렇게 흐른 시간을 따라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영혼도 몸 따라 낡아가는 것을 한껏 체감한다.


수를 센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회과학 방법론으로 통계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수를 세는 것에는 언제나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왜 매번 지나가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시간 따라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또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하는가? 이런 행위를 나에게 가르친 것은 누구의 뜻이며, 어떤 의도가 있던 것일까?


몸이 늙어감을 체감하는, 그리고 스스로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다. 최근 나는 전에 없이 늘어가는 흰머리를 보며, 어제보다 늙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이따금 생기는 상처가 좀처럼 쉽게 잘 아물지 않는 것을 보며 내 속에 숨어 있는 질병의 위력이 늙어가는 내 몸을 조금씩 압도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보다 더 많이 세고 앉아 있는 것은 따로 있는데, 그건 내가 뭘 하고 살아왔는가 싶은 것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그 열심이 무색하게 내 생의 곳간을 뭘로 채웠나 싶어 괜한 자책을 전보다 더 자주 하게 된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버렸던 다른 하나는 정말 딱 그 하나였을까, 아니면 얻은 하나는 비기지도 못할 너무도 큰 하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을 버리고 지금 내가 간직하고 있는 이것은 내 젊음을 내어주고 얻을만한 가치가 있던 것일까? 셀 줄 아는 능력은 이런 면에서는 축복이기보다는 저주다.


값을 매기는 일. 그건 근대 세계를 건설한 인간 이성의 가장 노골적인 면모다. 경영학은 그 값 매기는 일에 너 나 할 것 없이 나선 인간 군상이 이룬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 학문에서 박사를 받고 교수가 된 나는 인간이 집단으로 구성한 선호 체계 위에서 널뛰는 가치의 세상을 관찰하는 게 일이다. 그 세상 안에 나도 값 매김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 된다. 나란 인간이 살아온 인생에 매기는 가치가 시장이 정하는 것이라면, 그건 마치 노예시장에 벌거벗진 몸뚱이를 드러내 놓은 채 팔리는 노예가 되는 것 같은 비참함도 든다만... 형식과 제도가 약간 달라졌을 뿐 내 생의 가치는 딱히 그때와 뭐가 다르겠나? 가공할 것은 결국 사라진 줄 알았던 노예시장이 내 정신 깊숙이 박혀 내면화되었다는 사실일 따름이겠지.


얼마나 잘 살았는지는 결국 세어보면 되는 일이다. 세어야 할 것이 뭘까? 내 삶의 궤적 곳곳에 있던 중요한 모든 선택들은 다 얼마짜리였을까? 하나를 얻기 위해 버렸던 다른 것들은 또 그 값이 얼마였을까? 내가 밟아온 모든 길은 내가 버렸던 것들의 다 더해도 그것을 넉넉히 넘길 그런 값진 것이 되었을까? 누가 내가 도전적으로 이렇게 물으면 나는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는지... 딱히 자신은 없네. 세상이 뭐라 하더라도, 내가 값지다 생각하던 가치 체계가 있었던 치기 어린 어린 시절이 차라리 그립기도 하다. 경륜은 때로는 몹시도 치졸한 종류의 변명이라 느껴지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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