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이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 몇몇을 분책하여 스캔을 뜬다. 종이책은 그대로 간직할 의미가 있는 것만 남겨두기로 한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다 간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일회성 소비로 버리고 말면 되고, 어떤 것은 고이고이 간직하면 되는 책이다.
가끔 다시 들춰봐야 하는 책이 있다. 연구하고 논문을 쓰기 위한 목적이다. 이런 책은 종이로 들고 있을 필요가 딱히 없다. 세상이 달라져서 인터넷에 연결이 있기만 하면 받아 볼 수 있는 연구논문들처럼, 책이라 하더라도 그런 논문처럼 내게 있으면 되는 책. 그건 다 PDF로 만들면 된다.
사회과학의 이론과 발견이라고 하는 것은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그런 종류의 책이, 내게는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때그때 인용하는 것은 그 내용이 가치 있어 내 가슴에 품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학계의 관습이란 따라야 하지만, 뭐 딱히 그리 존경심으로 하는 작업은 아니다.
그래도, 이 업계에 간직하고 싶은 책이 있다. 그건 그 책의 내용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인간적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선배 학자들 중 그런 애착을 내게 준 이들이 있다. 그 선배가 나를 몰라도 괜찮다. 학술적인 완결보다, 인간적 면모가 내게 애착을 갖게 한다. 좋은 일이다. 과학의 허물을 뒤집어쓴 사회과학의 세계는 정말 지가 과학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지리 인간들만큼, 가슴이 따뜻한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이들이 있다. 그들이 나를 살게 한다.
때로 저 많은 저술이, 저 많은 책이 누굴 행복하게 했나 생각해 본다. 행복했던 건 제일 먼저 저자 자신이겠지만, 그 행복이 대체로 거기 그들 마음에 머무는 수준에서 끝난다. 때로 사회과학자들의 글은 쓴 그들 자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글들이 많다는 걸 사람의 마음을 가진 연구자라면 다 알 것이다. 자기 연구논문을 사랑하지 못하는 일종의 저주라고나 할까? 이 시대의 저주다.
대학원생들은 우스개 섞어 자조하는 말을 한다. 학위논문의 쓰임새는 라면 끓여 먹을 때 있다고. 맞다, 얘들아. 내 논문도 그랬다. 학술지에 찍혀내는 논문의 가치도 그럴지 모른다. 그나마 몇 MB 용량에 불과하다면, 종이보단 낫겠지. 물리적 부피를 차지하는 종이책을 보이지 않는 전자신호로 바꿔 또다시 알지도 못하는 메모리 저 안에 처박아 두 자. Ctrl + F 하나면 필요한 그것만 꺼내 쓸 수 있지 않나?
버릴 책을 버린다. 혹시나 싶어서 스캔해서 버린다. OCR로 긁어둬서 Ctrl+F로 쓸 수 있으면 딱이다.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내게 허락했네.
글을 쓸까 한다. ㄸㄸㅇ에 불과한 그런 글 말고, 어디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울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그런 글. 책을 잘라 스캔을 하고, 잘려나간 책을 종이 쓰레기로 버리면서 하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