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며
애교심, 애향심, 애사심, 애국심 저는 유달리 소속감이 깊습니다. 그 덕에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모든 것에 열과 성을 다하니 좋은 점도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모든 것들이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심리적 지배의 산물 같아 정말 내 생각이 내 생각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섬찟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들, 딸 가리지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반공 방첩,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날의 우리는 육체도 정신도 지배를 받으면서 그런 줄도 모른 채 지내왔습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이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고 틀린 일이 아니란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국군장병 아저씨께 위문 편지도 제법 썼고 답장을 받으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엄청난 일을 하는 분이란 생각이 컸으니까요. 이 생각이 대학을 가고 철없는 남자 동기가 하나씩 입대를 하자 조금씩 바뀌더니 친구의 아들이나 조카의 입대 소식을 듣곤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넓은 바다였다가 촘촘하기로 따지면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는, 한없이 좋았다가 끔찍하게 싫어지는 그래서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조정하여 다루는 정치가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월의 마지막을 앞둔 날 엄청난 소식에 밤새 잠 못 들고 힘들었습니다. 「이태원 압사 사고」 발생 직후 언론이며 방송에선 대규모의 인사사고이고 사망 연령층이 젊은층이라 묻어둔 기억에서 ‘세월호’를 바로 소환해 냈습니다. 피지 못하고 사그라든 많은 꽃봉오리 청춘들, 하지만 제 눌린 기억은 이 순간 촛불시위와 이를 이용한 정치 관련 이슈를 먼저 떠올려냅니다.
아무튼 망연자실한 채 뉴스를 보고 있는데 지원금과 유족 보상금 관련 문구가 자막으로 흘렀습니다. 시쳇말로 ‘빡친다’라는 감정의 표현이 솟구쳤습니다. 대한민국 참 부자나랍니다. 툭하면 돈을 준다니 그래서 못 받는 사람이 바보라 하여 악착같이 받아내려나 봅니다. 대체 자랑스러운 나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정치꾼들을 뺀 나머지 국민은 다 알고 있는데 왜 그들만의 리그로 수순 없이 국민을 현혹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차가운 바닷속, 아이들이 싸늘하게 식어가며 절규하던 사랑한다는 마지막 문자를 남겼던 순간을 상상하며 밤새 눈물 콧물 흘려가며 흐려지는 모니터에 매달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상상이었기에 더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와 다른 느낌입니다.
이태원 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가보진 않았어도 이름은 다 알 정도로 유명한 곳이고 붐비는 곳입니다. 그날, 사람들이 압사하는 순간에도 핸드폰 카메라는 멈추지 않았고 생과 사의 순간은 포털과 SNS, 뉴스에 여과 없이 고스란히 보도되었습니다. 살려달라 도와달라는 절규와 동시에 몸의 절반은 이미 죽어가고 있는, 눈으로 마주하는 지옥에 이미 아픔은 논할 수도 없습니다.
20대 자녀를 둔 엄마인 저도 지방 출장 중인 남편도 잠 못 이룬 채 아이들의 상태를 계속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며칠째 문득문득 그 장면이 생각나 하던 일을 멈추는 저를 보며 국민의 상당수가 가질 트라우마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최와 주관이 없었던 행사라고 적극적으로 신경을 못 썼다고 말은 할 수 있습니다. 의전이 없는 행사는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그래도 최소 사건이 발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현장의 정리와 노출된 참혹함에 불안한 국민을 설득하고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인데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힘을 모아서 처리하자 해놓고선 결국 당의 색을 드러내고 서로 물고 뜯으며 책임론을 운운합니다. 정말 뭣이 중할까요. 이래도 입방아 저래도 입방아 사람이 본디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정치에 뜻이 있다면 무게를 알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누르고 눌러지고 삶의 무게가 이보다 더 무거울 수 있을까요. 그곳에선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4분의 장벽을 넘을 순 없었지만 보태고 보태어진 뜨거운 손길들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