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저주

극과 극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지극히 동의 한다.


나는 기도와 저주가 같은 행위라고 생각한다.

단지 향하고 있는 방향이 다를 뿐.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간절한 바람을 비는 것은 기도.

누군가의 불행을 위해 간절한 바람을 비는 것이 저주.


살아온 날 만큼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많다.

누구나 겪는 일이기도 하다.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

어느 쪽을 더 많이 갈무리 하고 어느 쪽을 많이 비우느냐에 따라

인생은 꽤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행복한 사람이 될지, 불행한 사람이 될지,

혹은 감사하는 사람이 될지, 원망하고 억울해하는 사람이 될지.


유감스럽게도 나는 후자에 좀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태생적으로는 전자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극단적인 상황들에 오랜 시간 노출되었던 경험들이

나를 불행한 동굴로 밀어 넣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의로 그 동굴에 내가 들어앉아 있더라.


그 시간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미워하고 상황을 원망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누군가를 위해서 선물하는 걸 지극히 좋아하던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에 속 없이 기뻐하던 원래의 나를

불행과 원망에 물들어 있던 내가 끊임없이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누굴 미워하고 싶지 않았던 내가

누굴 미워하기 위해서 해야했던 것은

결국 나를 가장 미워하는 일이었다.


나는 늘 기도를 한다고 믿었지만,

사실 내가 하고 있던 건 저주였다.

누군가를 저주하고, 나를 저주하고,

나를 이렇게 방치하는 신을 저주했다.


이제는 기도가 하고 싶다.

있던 일들이 없어지진 않아도,

굳이 기억하고 담아두지 않으려고 한다.

억지로 잊을 수도 없는 일들이지만.

그리고 억지로 잊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안좋은 기억들이 떠오를 때,

그 구간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고마운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기도할 수 있는 나와 화해를 한하면

더 이상 나를 미워 하지 않아도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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