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다니다가 정신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며 내 끝은 결국 자살일 거라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중반 즈음 마지막 퇴원을 하고는 학교 생활을 못하겠다고 생각했고, 23년도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는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했다. 고등학교 1학년, 삐걱거리다가 몇 번 넘어지고 지금이 왔다. 특성화 고등학교 보건간호과를 다니는 나는 이제 실습을 나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아침 6시 45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옷을 갈아입고, 실습복을 챙겼는지 확인하고, 머리망을 하고, 시계를 차고, 마스크를 쓴다. 빠트린 물건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
7시 40분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8시 20분 즘에 병원 근처 정류장에 도착하면 병원 탈의실로 가서 실습복으로 갈아입고 조금 기다린다.
8시 45분에 병원에서 내가 실습하는 곳으로 가면 50분에 도착, 실습이 시작된다. 그때 나는 생각한다.
'와. 실습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다른 선생님께서 내게 무언가를 부탁하시면,
'내가 실수 없이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긴장하면서 할 일을 하고, 시간이 되면 활력징후를 확인하고 기록한다. 전산에 올리며 다시 생각한다.
'혹시 잘못 입력하지는 않았을까?'
혈당을 측정할 시간이 되면 준비를 하고 환자 분께 간다. 한 번 찔렀는데 피가 안 나오고, 피가 나왔지만 혈당기에 에러가 뜨면 눈에서 지진이 일어난다.
수치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그때부터 언제, 어떻게, 무슨 말로 보고 해야 할지 속에서 머리를 빙빙 돌린다.
비는 시간에 다시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반복되다가 결국 결론은 '못 해 먹겠다'가 된다. 그러나 결론과는 반대로 나는 계속한다. 계속, 다시, 한 번 더 하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는 지점이 온다. 그렇게 계속 실습을 하며, 다시 혈당을 재고, 한 번 더 확인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나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고, 그 답을 찾다 보면 내 존재가 신기해진다.
재작년만 해도 병원에 환자로 있었는데, 지금은 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네잎클로버 키링을 달며 행복해하는 것보다 불의의 사고가 내게 더 큰 안식을 가져다 줄 거라고 기대했었다. 내게는 그런 날만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바람은 자꾸 어디를 가는지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적어졌다. 벌어진 상처가 아픈 줄도 몰랐던 날이 지나가고, 나는 아픈 게 싫은 겁쟁이가 됐다. 끝없는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보다 차라리 고통에 잠겨 죽고 싶었던 내가 지금 이렇게 눈을 감고 바다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여전히 내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때로는 이유를 찾기 싫어 가루가 되어 강물과 함께 흐르며 잊혀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의 눈물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상관 없었지만, 이제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새로운 떨림과 화려한 반짝임이 있던 날카로운 절벽은 파도에 부딪히고 떨어져서 바다 위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익숙함이 됐다. 그것들은 다시 둥근 자갈처럼 모여서 햇빛을 받으면 작은 반짝임을 낸다. 이전의 절벽처럼 웅장한 눈부심은 없었지만 위태롭지도 않았다.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새해맞이 글입니다.
12월 31일, 2023년의 마지막 날 밤에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힘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