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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나투스 Mar 20. 2022

나를 버티게 한 사람

Modern Love 

아래의 사진은 아마존 프리미엄 드라마 <모던 러브> 시즌 1 에피소드 2의 한 장면이다. 사진 속 두 남녀는 각자 결혼을 했고 자식도 있다. 17년 3개월이 지난 후, 서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과거에 시작하지도 못했던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각이 나고, 이별 후에 점점 더 커지는 그런 사람.


오래전 격언을 인스타에 올린 적이 있다,


"진정한 사랑의 깊이는 이별한 후에 알게 된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뉘앙스의 글귀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누군가가 했던 문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스타에 이 글을 올릴 때는 그냥 이 문장이 멋져서 올렸다. 그 정도의 깊이로 만났던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문장이 멋지다고 생각해서 올렸고, 댓글에서 몇몇 친구들이 격하게 공감한다고 했다.


나는 이제야 그 문장의 깊이를 조금 알 것 같다.

얼마나 깊었는지는 헤어지고 나서 알게 된다는 그 말.


우리는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함께 했다. 내가 하던 사업의 손님으로 만나게 됐고, 1년간 서로를 알고 지내다가 누구나 그렇듯이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서로 가까워지고 끌리게 됐다.


그 이전에 나에게는 몇 명의 공식적인 연인이 있었지만 연애를 그리 자주 하고, 잘 시작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여자를 보는 눈이 까다롭기도 했고, 또 막상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도 마음을 잘 얻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 이유에는 복합적인 이야기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라는 게 없었다. 


항상 이전의 만남에서도 마음이 휙휙 바뀌어버리면서 이별을 고하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런 스스로가 당혹스럽기도 했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마치 피가 들끓던 중고등학생 시절, 집이 하루 동안 빌 것으로 예정된 날에 야한 동영상을 실컷 시청하겠다며, 자위를 여러 번 열정적(?)으로 하겠다는 포부를 품었지만, 첫 번째 영상을 보면서 거사를 치른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열정이 시들시들해져 버리는 나 자신을 보는 느낌이랄까? 생각과는 다르게, 휙휙 바뀌어버리는 내 마음을 보자 하니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노골적인 비유를 했지만, 실제로 나는 어떤 이성과 스킨십을 하거나 혹은 몸을 섞고 나서 마음이 식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만나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생각이 많았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으로만 이 아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는 게 말이 될까? 또 고백을 해서 만나게 된다고 해도, 내가 마음이 또 식어버리는 건 아닐까? 이런 확신 없는 마음으로 고백을 하는데, 과연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 보니 그 아이에 대한 지금의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다는 게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영원한 만남과 사랑을 꿈꿨던 것인가? 


이러한 생각들이 많았지만, 나는 당시 <어린 왕자>의 '여우 이야기'를 되새기며 용기를 많이 얻었다.


'수만 마리의 여우 중 특정한 한 마리의 여우를 길들이기로 마음먹고, 상대 여우도 동일한 마음이라면 그때부터 그 여우와의 관계는 수만 마리의 여우들과는 다른 특별한 여우가 된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로 기억한다. 


이 이야기에서 용기도 많이 얻었고, 또 주변에 아는 여자 지인들에게 나의 이런 속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여자 입장에서도 시작부터 막 엄청나고, 불멸을 약속하는 사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해주며,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좋아하는 그 마음 자체를 담백하게 잘 표현하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나는 내가 좋아했던 그 아이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했고 우리의 만남은 시작이 된다.


.

.

.


그렇게 우리는 두 계절을 지나 이별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감정들을 많이 겪었지만 그 이야기는 가슴에 묻어두도록 하겠다.)


이별을 할 때도 우리는 서로를 꼬옥 안으면서 헤어졌다. 헤어진 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했고, 또 실제로 그 아이가 내가 올린 삶에 대한 고뇌가 담긴 인스타 피드를 보면서 응원의 말을 DM으로 전해주기도 했고, 나 역시도 그 아이가 늘 그래 왔듯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지금도 여전한 마음이다.)


 헤어진 직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그 아이를 생각하며 건강하게 잘 살고 싶어 진다. 이별에 대한 복수심에 잘 사는 내 모습을 과시하려고 하는 게 아닌, 정말 그 아이가 내가 잘 살기를 바라는 그 진심 어린 마음에 부응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리고 내가 잘 못살고 있다면 그 아이는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


이런 생각들로 위에서 캡처한 단편 드라마를 보면서 괜시리 더 감정이입이 되었고 눈물이 났다. 이별 후 나 역시도 힘든 과정들을 겪었고, 또 겪게 될 테지만 그럴 때마다 그 친구가 떠오를 것 같다. 힘내라고, 잘 해낼 수 있다고 해맑은 기운으로 나를 응원해주던 그 아이가 참 고맙고, 그런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던 나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렇게 떠올릴 수 있고, 가슴 한 편에 남아있는 사람이 내 인생에도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너도 여느 때처럼 잘 살고 있지!? 나도 앞으로도 잘 살게, 우리 둘 다 행복하게 잘 나아가 보자 :)


아차 그리고 나 너를 만나기 전에는 항상 받았던 편지며 사진들은 모두 버렸는데, 너랑 함께 했던 것들은 차마 버리지 못하겠더라. 나에게도 소중한 기억,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주어서 고마워!!



-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저렇게 만나자! 서로를 응원하는 친구로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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