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원하는 것, 아 내가 원하는 것
아내가 나의 글쓰기에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한 것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지만, 나는 언제나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밀고 나아가는 일에는 약하디 약한 성격이었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미루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 브런치를 안 쓰고 있네 요즘"
라고 했더니, 아내는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던졌다.
"이제 신혼일기 쓰기에는 신혼이 아닌 거 아니야?"
가끔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감이 아니라 승부욕 또는 오기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순간적으로 아내의 말을 듣고 떠오른 생각은 아래 2가지였다.
1. 글을 쓰지 않은지 얼마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2. 주택 청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신혼 기간은 '혼인 신고일부터 7년 이내'이기 때문에 아직 신혼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
그렇다. 2번째 생각을 대입해 보자면 나는 아직 6년 하고도 절반이나 더 신혼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셈이다.
아내는 항상 나보다 반박자 빠르다.
오늘 모처럼 휴가를 내어 조금 이를지도 모르지만(애초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가기 전에 둘 다 일절 하지 않았다.) 벚꽃 명소를 아내가 찾았다길래 꽃구경을 나섰다.
아내가 봤던 영상은 작년의 영상으로, 실제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수확이 끝나 황량한 과수원과도 같은 언덕과 몽우리만 보이는 벚나무 숲뿐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리며 꽃구경을 하지 못해 아쉬울 아내를 위해 오랜만에 꽃다발을 안겨주기로 속으로 다짐했다.
아내의 '지금 가장 원하는 것'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은 항상 나의 다짐보다 반박자 빠르다. 쇼핑몰에 도착하여 배회하다 꽃집이 눈에 보이자마자 아내는 그 감각을 여지없이 뽐냈다.
"꽃 제대로 못 봤으니까 오늘 꽃 사줘"
감탄과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의 속마음 보다 항상 빠른 아내의 말.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은 역시 상대적인 것이리라.
아내와 결혼하고 지금까지 스물한 편의 영화를 같이 시청했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아내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같이 본 영화가 100% 내 취향에 들어맞지 않는다 하여도 내게 맞춰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내의 그런 노력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같이 본 영화는 꼭 기록해야겠다.)
스포츠에 'ㅅ(시옷)' 조차도 관심이 없는 아내가 내가 틀어놓은 야구 중계를 보며 저기서 저런 경우가 생길 때에는 룰과 점수가 어떻게 되는 건지 물어왔을 때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던 오늘이다. '아,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라는 감탄의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사실 '아내가 원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잘 공감해 주는 것이 가장 아내가 원하면서 또 가장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그 '잘'이라는 게 항상 어렵기만 하다. 화성에서 온 내가 금성에서 온 아내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순간들이 우리가 함께 본 영화 목록 속 영화보다는 더 많아지기를. 부디 진심으로 바란다.
본 시리즈는 아내의 검수를 일체 받지 않기로 사전 협의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