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터 상수동에 살았다. 처음엔 서교동에 살았다고 했으나 기억에 없다. 시위가 일어나면 도로를 덮는 자욱한 최루탄 연기 때문에 상수동으로 집을 옮겼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첫 번째 우리 집은 다섯 평 남짓한 마당이 딸린 집이었다. 나는 마당에서 곧잘 콩벌레를 돌돌 말아 귀찮게 하거나, 집 벽을 기어 올라가다가 떨어지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그곳에 살았는데, 거기에선 골목의 집집마다 또래 친구들이 있어서 하교한 이후 저녁 먹을 때까지 모두 골목에 나와서 어울려 놀곤 했다. <응답하라 1988>의 친구들처럼, 우리도 서로를 매일같이 불러대면서 놀았다. 이 일상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아주 영원할 것처럼.
그렇게 수 년을 보내다가, 갑작스레 귀국한 집주인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집을 비워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회사도 학교도 다 근처였기 때문에 멀리 가기 곤란해하던 중, 마침 원래 살던 골목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 조금 더 걷는 골목에 집이 하나 비었다고 했다. 우리는 급하게 그리로 이사를 갔다. 집주인이 당분간 안 온다고 해서 아빠는 우리의 자비를 들여 화장실까지 수리해 놨는데, 갑작스레 말을 바꾸니 억울하게 됐다고 했다. 우리가 이사가는 날, 골목의 친구들과 '안녕' 인사했지만, 도보로 10분도 안되는 거리니 별 감흥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횡단보도 하나의 거리감은 컸다. 우리를 시작으로 하나 둘 골목 친구들이 떠나갔고, 옛날의 기억은 이제 아주 바랜 사진으로만 한 장 남아있다. 지금에선 그 사진 속의 이름들을 선뜻 기억하지도 못한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마당이 없었다. 잔디나 잡초, 감나무가 심어져 있던 옛날 집과는 다르게, 여기는 한 줌의 마당(이라기보다는 통로에 가까운)마저 시멘트로 매끈히 발라져 있었다. 대신에 무슨 커다란 돌이 심어져 있었는데, 거기엔 '1978년 완공'이라고 자랑스레 박혀 있었다. 나는 89년생, 나보다 열한살이 많은 집이구나, 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 골목엔 또래 친구는커녕 누가 사는 지도 잘 몰랐다. 우리 집 옆에 있던 3층짜리 빌라는 거주민이 수시로 바뀌었고, 앞집에는 늙은 할아버지가 혼자 살았다. 옆집엔 누가 사는 지 몰라도 언제나 걸걸한 기침소리가 났다. 이웃들끼리 왕래를 잘 안하는 골목이라고 했다. 골목 초입에 있는 빌라에는 무슨 철학관이 있었다. 뭔지 잘 몰랐지만, 그 앞을 지날 때면 늘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 집은 그렇지 않았지만, 이 집에선 집끼리 워낙 붙어 있는 바람에 우리집 벽을 타고 넘어가면 바로 뒷집 의 뒷벽 창문이었다. 간혹 열쇠를 잊은 날, 나는 집을 둘러 싼 벽을 살곰살곰 넘어가 이 미터 남짓한 벽 아래에 기다란 돌을 얹어두고 그 돌을 발판 삼아 기어 올라 가곤 했다. 그러다 보면 뒷집 아줌마가 안방에서 하는 소리가 사근사근 들려왔다.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나는 이 집에 점차 적응해가고 있었다. 과자 봉지를 잠깐 열어놓기만 해도 개미떼가 달려드는 내 방, 겨울에는 외풍이 너무 심해 차마 샤워를 할 수조차 없는 화장실, 많은 것들이 불편했지만 어쨌든 우리 가족이 사는 우리 집이었다. 초등학생인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취업하기까지 나는 이 집에 살았다. 그리고 신입사원 연수를 다녀온 어느 날, 우리 집이 재개발 대상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