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예술가들의 고향
이리카페는 내가 처음 가 본 카페였다. 백오십원짜리 자판기 밀크커피와 편의점의 레쓰비가 커피의 전부였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나는 이리카페에 처음 갔었다. 그 당시엔 상수동이 아니라 홍대와 신촌 중간 언저리 쯤에 있었다. 내겐 '이리카페'보다는 '무화과마트'가 더 익숙한 골목이었다. 친구들은 몇 번 와본 것처럼 '여기가 진짜 유명한 곳'이라며 나를 데리고 들어갔는데, 정말 처음 보는 풍경이라 나는 얼떨떨하기만 했다. 우리 모두 처음 와 본 얼뜨기 취급 받지 않기 위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서로 뭘 시켜야할지 어버버하다가 너나할 것 없이 제일 싼 음료를 주문했다. 마시면 혀 끝에 눅눅하게 설탕이 달라 붙는 자판기 커피가 아닌 진짜 커피가 나왔고, 우리는 마시면서 '뭐 이딴 걸 돈 주고 주문했냐' 하고 툴툴거렸다.
고등학생이 다니기엔 너무 비싼 커피여서 자주 가진 못했지만 우리는 이리카페에 종종 갔다. 당시 우리 학교엔 야자가 없었는데, 대신 친한 그룹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마포도서관으로 공부를 하러 다녔다. 나는 문예창작과 진학을 준비 중이었고, 내 주변의 친구들도 예술이나 예체능계로 가고 싶어했다. 예술가들의 카페라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우리는 이리카페에 가면 영감이 돋는다며 용돈이 좀 생기면 이리카페로 달려갔다. 점차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이런 메뉴들에 익숙해졌고, 나는 그곳에서 1000자 원고지 뭉치를 꺼내놓고 문예창작과 실기 실습을 위한 소설을 썼다.
이리카페가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건 대학생이 된 이후였다.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되살리며 무화과마트를 찾았는데, 그 맞은 편에 있었던 이리카페는 이미 없었다. 수소문하니 상수동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리로 갔더니 전의 그 익숙한 카페가 익숙치 않은 장소에 서 있었다. 왜 옮겼는 지는 그때 알았다. 이리카페 장사가 잘되니 그 건물주의 조카가 자신이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했단다. 건물주들의 흔한 착각이다. 가게 주인이 잘했기 때문에 영업이 잘 된게 아니라 목이 좋아서 잘 되려니, 하는 착각.
이리카페가 옮긴 곳은 주말이면 아빠가 골프장으로 향하던 언덕배기 중간이었다. 다소 음침한 골목으로, 나는 골프 연습간 아빠에게 뭔가 심부름 갈 때가 아니면 굳이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이리카페가 그리로 옮겼다고 해서 나는 한 두번 갔을 뿐, 그래도 그 골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리카페도 뜸해지게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그리고 카페를 다니면 다닐 수록, 이리카페가 다른 카페와는 정말 다른 곳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곤 했다. 나는 카페를 이리카페로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그 독특함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이리카페에는 이리카페에서 발행하는 <월간 이리>가 있었고, 인디밴드들이 주기적으로 공연을 했고, 한쪽 벽면에는 희안한 영화필름을 틀어주기도 했다. 뭔가 공생을 꿈꾸려는 카페 같았다. 단지 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는 구매자로서의 손님이 아니라, 손님들의 작품을 걸어주고, 들려주고, 보여주는 그런 곳.
그런 이리카페가 또 밀려나야 할 지도 모른다고 한다. 최근 이리카페에 가보니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또 다시 건물주는 착각을 가지고, 다른 욕망을 품는다. '공생'의 공간은, 이렇게 자꾸 여기저기로 떠밀려야 하는 걸까. 이리카페에 가면 만나곤 했던 십 년 전의 나를, 나는 이제 또 잃을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수동 토박이'의 첫 문을 '이리카페'로 여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렇게 공간들을 강제로 훼손한다면 남는 건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젠트리피케이션일 뿐이다. 나의 고향 상수동이 이렇게 되기 원치 않는다. 이미 너무나 많이- 그렇게 되어왔지만, 수 많은 시간이 지나왔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그나마 할 줄 아는 글 쓰기를 통해 나는 이 흐름에 저항하려 한다. 기록으로써 공간을 남기고 공간에 대한 추억을 박제하여 여기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단지 가게 주인 한 사람만 밀어내면 되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간접적으로라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