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병 닭 무침

by 허영건

음식에도 '홍대병'이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메뉴나 가게를 홀로 알 때의 비밀스러운 만족감에서 홍대병이 발병하는 듯하다. 나를 포함해 음식 홍대병에 걸려버린 사람들은 남들이 잘 모르는 음식과 가게를 찾아내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음에도 이곳저곳을 누비느라 바쁘다. 대표적 증상들로는 전혀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골목의 가게를 들어가 본다던지 메뉴판 귀퉁이의 생뚱맞은 메뉴를 시키는 것들이 있다.

병이라 불러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발병자의 삶은 제법 괜찮다. 평양냉면집에서 굳이 비빔냉면을 시켜보면 그 맛이 꽤 괜찮은 경우가 많다. 또 이들이 도시의 구석구석 숨겨진 음식점을 찾아내며 노포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됐는지 모른다. 많은 가게를 방문하며 자연스레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음식점 추천을 부탁하기도 하는데 참으로 주위에 도움이 되는 병이기도 하다.

홍대병 환자로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생소한 메뉴를 지인에게 먹였을 때 격하게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여러 경험상, 음식 대접을 하며 격하게 반응을 보기는 생각보다 어려운데 이는 메뉴가 너무 생소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이라며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재료나 향신료를 들이밀어선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메뉴지만 익숙한 맛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비장의 무기가 몇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닭무침이다. 성인들 중에도 닭무침이라는 메뉴가 생소한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닭 무침은 찐 닭을 먹기 좋게 손으로 찢어 고춧가루와 식초, 설탕등의 조미료와 미나리, 양파 등의 야채로 새콤달콤하게 무쳐 차게 먹는 음식으로 보통 닭전문점이나 평양냉면집과 같은 이북 음식점 등에서 접할 수 있다. 소주가 자연스레 들어가는 가게들에서 많이 취급하기에 먹는 걸 즐기는 주당들은 이곳저곳 다니며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술 한잔하기 위해 들른 종로의 닭 전문접, '와룡동 닭매운탕'에서 닭 무침을 처음 접했다. 블로그에서 발견한 가게로 여러 사람을 끌고 갔는데 닭무침을 단품으로도 주문 가능하지만 기본 닭볶음탕을 시키면 닭무침을 서비스로 내주었다. 생소한 음식으로 젓가락이 우선 향했는데 파절이처럼 새콤달콤한데 잘게 찢은 닭고기가 들어가니 익숙한 듯 새로운 맛에 놀랐다. 샐러드처럼 가벼워 속에 부담이 없고 이후 술자리를 위해서도 적격이었고 무엇보다 닭볶음탕이 국물이 많은 스타일이어서 소주 한잔하고 국물 한입 하면 깊은 국물 맛에 다시 또 소주를 들이켜고 닭무침을 한입 하면 입이 깔끔하게 정리돼 바로 또 소주를 들이켜게 되는 무한굴레에 빠지게 되니 이보다 소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를 본 적이 있나 싶었다.

그날은 결국 만취해 엠뷸런스(=택시)에 의지해 겨우 집으로 기어 들어갈 수 있었고 취기에 힘든 와중에도 새로운 메뉴를 발견했다는 흐뭇함과 나 역시 처음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새로운 음식을 소개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잠에 들었다. 이후에도 새로운 메뉴에 눈을 뜨게 되는 경험을 몇 번 하게 되고 그 메뉴들을 지인들에게 소개해 주며 홍대병은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의 상태가 제법 만족스럽다.


+++ 본 질병의 안 좋은 점도 물론 있는데 대표적으로 나만 알던 게 널리 퍼지는 경우다. 얼마 전 나영석 PD의 유튜브 프로그램 '맛 따라 멋 따라 대명이 따라'에서 김대명 씨가 평양냉면집에서 닭무침을 추천하는 것을 보고도 철렁했다. 이외에도 부작용들이 몇 있는데 이후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