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음식이나 스페인 음식과 같은 외국 음식을 먹을 때면
" 여긴 맛이 현지화가 많이 됐네"
" 하노이에서 쌀국수를 먹으면 말이야~"
따위 입맛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나다).
이들의(=나다) 입장은 본토에서 진짜 맛을 볼 수 있으며 외국 음식이 국내에 들어오며 현지화 과정을 거치고 많은 부분이 휘발된다는 것이다. 본토의 맛을 원본이라 보고 국내 입맛에 맞춰 현지화된 맛을 페이크라 보면 이는 짐짓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페이크가 원본에 열등한 것일까? 그 이전에 둘 사이에 우열이 있다 할 수 있을까? 또 원본이란 게 존재하긴 하나? 적어도 음식에 관해서는 생각해 봄직하다.
해외의 음식이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분명 그 맛이 변질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특히 도입 초기에는 핵심적인 재료들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음심점 주인 당사자 또한 해당 메뉴와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아 제대로 된 맛을 못 내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적극적인 현지화로 시장에 공고히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미국식 피자, 일본식 카레가 그렇고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한국식 중화요리가 그러하다.
한국식 중화요리를 두고 '중국에는 이런 요리는 없어'라고 하는 경우들이 있다. 대표적인 중화요리인 짜장면만 해도 그렇다. 한국식 짜장면은 양파를 필두로 다양한 야채와 고기를 춘장과 함께 볶아내 뜨거운 상태로 면과 비벼먹는다. 이에 반해 중국식 짜장면(炸醬麵)은 면장을 볶아 삶아낸 면 위에 얹고 오이, 무채, 고수 등의 생야채를 곁들여 차게 먹는다. 중국식은 차가울뿐더러 국물이 없고 장맛도 된장에 가까워 한국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중국식 짜장면과 그 맛의 상하를 논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식 중화요리를 한식이라 부르긴 애매하나 외국음식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익숙할 만큼 우리 식문화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탕수육을 앞에 두고 중국식이 아니라며 안 먹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중식이 본토와 다른 게 무슨 상관이랴? 동네마다 맛있는 나만의 중식집 한 군데씩은 있고 오래전부터 영업을 이어온 곳은 낮에도 브레이크타임 없이 운영하는 곳이 많아 맛있는 음식과 낮술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아 그 맛을 즐기기에도 바쁘다.
일본의 유명 라멘 만화가 탄 카와이(河合 單)의 '라멘재유기'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라멘 장인이자 비즈니스맨인 주인공 세리자와 타츠야와 카리스마 요리연구가 시오미 요코가 라멘 대결을 통해 각자 나름의 라멘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내심 라멘을 하류 요리로 생각하는 요리연구가 시오미 요코는 '라멘은 페이크'라 정의한다. 라멘은 일본에서 전후에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해 기계로 만든 면을 사용하고 닭뼈, 돼지뼈, 야채 등을 이용해 육수를 내는데 그 감칠맛의 상당 부분을 화학조미료에 의존했다. 고명으로 올가는 차슈는 중국이 기원으로 본래는 돼지고기를 굽는 조리법의 차슈를 라멘집에서는 육수에 넣어 국물을 우려내고 이후 간장 양념으로 끓여 맛을 낸다. 라멘의 주요 구성 요소인 면, 육수, 고명 모두 오리지널이 없어 '페이크의 페이크'가 라멘의 본질이라 시오미 요코는 말한다.
이에 대한 세리자와 타츠야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 라멘이란 페이크에서 진실을 태어나게 하는 정열 그 자체입니다.'
탄 카와이의 전작, '라면요리왕'에 이은 라멘 시리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로 적어도 음식에서는 원본의 유무가 중요치 않고 더 나아가 원본과 페이크에 우열이 없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