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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 planEAT 아워플래닛 Jul 03. 2021

우리가 사랑한 바다

part.1

경남 남해군


여러분들에게 바다란 어떤 곳인가요?

저는 오래전부터 바다를 좋아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는 바다의 풍경은 외가가 있는 부산의 해변입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한 달이 넘게 외가에 머무르며 사촌들과 함께 대부분의 날들을 바닷가에서 보냈습니다. 

투명한 바닷물은 왜 파랗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어디에서 오는 건지, 반짝이는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린 저에게 바다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지의 대상이자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Uluwatu beach, Indonesia


성인이 된 후에는 스쿠버 다이빙이나 서핑 같은 해양스포츠를 통해 조금 더 바다와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파도 위를 가로지르는 짜릿한 쾌감도 좋았지만 그저 서핑 보드에 앉아 잔잔한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고요한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져서 저는 파도가 없는 날에도 종종 서핑을 하러 바다로 나섰습니다. 

처음 바닷속에 들어간 날의 감동도 떠오릅니다. 수족관에서나 보았던 물고기들이나 바다거북과 함께 형형색색의 산호초 사이를 유영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바닷속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경이로웠고 한눈에 담기도 벅찬 광활하고 장엄한 광경 앞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영롱한 푸른 바닷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바다생물들을 보고, 저는 생전 처음으로 그들이 야생동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선’ 이 아닌 우아하고 아름다운 생명체로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것이지요.


Great barrier reef, Australia


생선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에 저희 집 식탁에는 늘 고기반찬보다 건어물과 생선으로 만든 반찬이 많았습니다. 때가 되면 외할머니께서 보내주시는 제철 생선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식성도 고기보다 생선을 선호하게 되었고 요리사가 된 이후로도 생선요리 레시피들을 모으고 연습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레스토랑에서 어패류를 이용한 요리를 메뉴로 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요리를 업으로 삼고 지낸 지난 십 수년 동안 레스토랑에서 차리는 식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시장의 생선들은 해가 다르게 점점 작아지다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너무 비싸거나 점차 수입산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일부 자연산 재료들은 더 이상 잡히지 않아 메뉴에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해마다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하셨습니다.


충남 홍성의 한 위판장, 2019년 10월 – 사진 속 여자분의 손 길이는 15cm 정도입니다


환경에 대한 저의 관심은 좋은 식재료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제 주방에서 사용하는 모든 식재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누가 생산했는지’, ‘어떻게 기르고 수확하는지’와 같은 호기심은 언제나 ‘왜 그런가’에 대한 답을 요구했고 저를 그전까지 몰랐던 자료들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책과 자료들을 통해 접한 바다의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본질에 파고들수록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사실들과 마주해야 했고 대부분의 자료들은 인간의 잔인함과 탐욕의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기에 마음을 무겁고 슬프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좋아하는 바다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저도 레스토랑에서 알이 꽉 찬 도루묵이나 주꾸미, 총알 오징어로 많은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마리 수로 합치면 수 천마리는 될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노가리나 산낙지, 풀치 같은 것들을 안주나 반찬으로 먹기도 했지요. 참치나 연어회도 좋아하는 횟감이자 즐겨 사용하는 재료였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속상하고 후회되는 일이지만 이제라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에 대한 요리사로서의 제 생각과 결정은 요리 자체만큼이나 잘하고 싶은 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강원 고성군 아야진 해변


수산 자원의 남획과 혼획, 불법 어업,, 알과 치어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잘못된 음식문화에 따른 특정 어족 자원의 고갈, 플라스틱을 비롯한 해양쓰레기 문제, 기후 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과 바다 생태계의 변화와 같은 암울한 이야기들에 대해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실 겁니다. 

80년대 이후 전 세계의 어획량은 거의 정체된 상태이고 이에 따라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어업의 패러다임도 변했습니다. 하지만 대형 어종, 대규모 밀집 양식에 따른 연안 오염은 또 다른 문제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전국의 마트와 시장, 인터넷 쇼핑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수많은 수산물을 접하고 있지만 바닷속은 점점 비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에 더해 무분별하게 잡아들인 물고기들의 빈자리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와 플라스틱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2050년의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도 합니다.


강릉 사천해변에서 수거, 2020


사회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 Roman Krznaric 은 '우리가 미래를 마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식민지처럼 다루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따르는 막대한 사회적, 생태적 부채를 고스란히 다음 세상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다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어업이나 생태계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늘 있던 식재료가 식탁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그로 인해 파생된 문화들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 바다에서 더 이상 잡히지 않는 명태는 전량 수입산에 의존하게 되었고 명란젓, 코다리찜, 북엇국 같은 친숙한 우리 머지않아 식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더 이상 노가리가 잡히지 않으니 ‘노가리 까다’라는 말도 일상의 대화에서 없어질지 모릅니다. 


우리의 바다는 과연 예전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갖가지 비관적인 통계들과 전망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아직 바다가 스스로를 회복할 능력을 잃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회복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인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자연을 파괴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생활방식의 모든 부분이 환경에 영향을 주고 있을 뿐이지요. 

1인당 수산물 소비량 세계 1위.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2위.

대한민국이 기록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의미 있는 수치는 우리가 바다와 바다생물들에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이유와 그 책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전남 보성군 회천면


바다가 처한 지금의 위태로운 상황들은 유한한 자원인 바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장의 확실한 변화로 바다를 예전의 상태로 돌릴 수는 없지만 복구를 위한 시작은 우리 개개인의 관심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막막해 보이기만 하는 문제들 앞에서 이따금씩 저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노력이 의미 있는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알아보는 것으로 상황과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고 내 행동의 방향에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의식 있는 행동과 현명한 소비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도 바다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에 충분한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편에서는 우리의 바다를 위한 대책과 노력들에 대해 소개하고 요리사로서 제 나름의 바다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바다가 비어 가고 죽어가는 동안에도 무심한 사람들의 눈에 그 수면과 파도는 여느 때처럼 평화롭게 보입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바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여러분도 저처럼 바다를 좋아하시나요?


제주 성산 광치기 해변

글과 사진 by 요리사 김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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