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득이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유골함을 거실에 둔 후 대화를 나눴었다.
득이가 효자라 날씨가 따뜻할 때 갔다는 둥, 효자라 병원비를 일주일만 쓰고 갔다는 둥, 하다 못해 효자라 토요일에 떠나서 마음 추스를 시간을 줬다는 둥 온갖 거에 득이를 칭찬하며 서로를 토닥였다.
나는 그날 득이가 곧 갈 거란 걸 예감하고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왔었다. 물도 안 먹던 득이가 병원 통원길에 순대트럭을 지나면서 유일하게 코를 날름거리며 반응을 했었는데 안 사준게 한이 될 거 같아 뭐라도 좋아하던걸 먹이고 보내고 싶어서 닭죽을 급히 배달을 시켰었다.
하지만 도착하기 전에 득이는 떠났다.
숨이 멎은 득이를 뒤에 눕혀놓고 그 닭죽을 퍼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는지 정신이 약간 나가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변이 다 나와 더러워진 득이를 욕실에 눕히고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목욕을 시킨 뒤 드라이로 말리고 담요에 잠시 눕혀둔 채로 득이의 최애음식이던 계란을 삶고 불리스틱과 크림빵을 챙기고 좋아하던 음식들을 잔뜩 싸서 장례를 치르러 나섰다.
얼른 육신을 보내줘야 득이 영혼이 안 아픈 몸으로 훨훨 갈거라 믿었기 때문에 기계처럼 그렇게 움직였던 것 같다.
온갖 음식을 둘러쌓아 놓고 득이 장례를 치르면서 이거 천천히 다 먹고 가라며 마음속으로 빌었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강아지 용품점에 들어가 득이 간식을 산다.
좋아하던 것 위주로 사고 가끔 처음 보는 신상 간식이 보이면 함께 사서 득이 간식 접시에 담아둔다. 예전엔 비싸서 특별할 때만 사주던 불리스틱은 이제야 매일 놓아준다.
복숭아를 깎던 두부를 데치던 득이 몫은 항상 덜어둔다.
길을 걸으며 아래를 쳐다보면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앞장서 걷던 득이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매일 앉아서 날 바라보던 소파 구석자리에는 득이가 쉬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둘이 자주 함께 걷던 나비공원 산책길은 아직 마음속 금지구역이라 가보질 못했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아직까진 모르겠다.... 하루하루 더 그립다.
보고 싶다는 말도 어떻게든 볼 수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말이란 걸 배웠다.
이 모든 건 글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같다.
10살이던 득이는 내 가슴에서 어느덧 11살이 되었다.
비슷한 나이의 갈색푸들을 보게 되면 우리 득이가 저랬겠구나 하면서 상상을 해본다.
득이가 잘 간 건지 아직 못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바란다면 원하는 모습으로 이 세상이던 저 세상이던 안 아프게 지내고 있기만을 바란다.
1년... 이제는 아무 때나 나갈 수 있고 집을 얼마를 비우던 괜찮다. 치킨 먹을 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침대는 넓어져 편하게 잘 수 있다. 코가 늘 막혀 고생스러웠는데 씻은 듯 나았다. 산책도 나가지 않아도 되니 비가 오던 눈이 오던 걱정할 일이 없다. 이 자체로 자유인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득이와 함께 만든 추억들을 멋진 풍경 보듯이 바라볼 때가 가장 행복하고 재밌는 일이 되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듯 조금씩 꺼내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나의 친구이자 나의 아들, 나의 엄마였고 나의 선생님이었던 득이가 편안히 지내고 있길 기도하며 첫번째 기일을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