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에도 기다림이 있었다
무리 속에 있지만, 무리 안에 없는 존재
오늘 TV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오래 남는 장면을 봤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아기 원숭이가
오랑우탄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작은 몸으로
그 큰 인형을 품에 안은 채
원숭이 무리 사이를 돌아다니는 모습.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며 말했다.
“마음이 아프다.”
“외로웠겠다.”
“힘내라.”
그 말들을 듣다가
나는 잠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와
밖에 나가면
사람들의 눈빛은
대개 다르다.
걱정보다는
불편함에 가까운 시선.
위로보다는
조용한 한숨.
그래서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잠깐
사람들이 조금 이중적으로 느껴졌다.
동물의 외로움에는
쉽게 마음을 내어주면서
사람의 외로움에는
왜 그렇게 인색할까.
그 생각이 마음에 남아서
집에 와서
그 원숭이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
알고 보니
그 원숭이는 무리에서 버림받은 것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버림받아
사육사에게 자랐고
지금은 다른 원숭이들과 함께 지내며
조금씩 무리를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혼나기도 하지만
가끔은 친절하게 대해주는 원숭이도 있다고 했다.
그 기사를 읽고 나서
나는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물의 세계에도
배우는 시간이 있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있구나.
나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장면들은
남들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는 순간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속도로 살아가지 못하는 시간들.
나는 그런 시간들을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그 원숭이를 보며
처음에는 조금 화가 났다가
나중에는
그냥 마음이 아팠다.
외로운 존재에게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보내는 건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그 장면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는 존재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조금씩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오늘 그 원숭이를 보며
내 마음이 오래 멈춰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작은 원숭이가
지금도
자신의 속도로
무리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그렇게
기다려지는 존재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