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품었지

태어나지 못한 마음들

by OurSlowBlooms

해마는 세상에서 드물게 ‘수컷이 새끼를 품는’ 생명이다.

그 생태는 늘 신기하게만 들렸지만, 어떤 관계는 그 사실보다 더 잔혹했다.
누군가를 품을 수 있으면서도 끝내 품지 않는 존재.

그런 존재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몸길이 8센티미터 남짓한 수컷 해마의 꼬리 쪽에는 육아낭이 있다.

암컷 해마가 그곳에 알을 낳으면 그제야 수정이 일어난다.


나도 너의 육아낭에 알을 낳았다.
하지만 너는 수정하지 않았다.


그 안의 알들은 하나둘 썩어갔다.

다른 수컷 해마들은 모두 부화시키는데,

너는계속 알을 품은 채로 있었다.

부화해야 다시 채울 수 있을 텐데, 썩어가는 알을 보며 끝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랑도 생명처럼 자라나려면 응답과 온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관계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없다.

썩어가는 마음을 보면서도 품고 있는 척만 하는 관계.

그곳에 오래 머물렀던 날들은 내 마음도 함께 부패시키곤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멈춰 있는 동안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사라지는 것보다 더 아픈 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시간이라는 걸.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