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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03. 2020

자기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입니다

여섯 번째 소란

사장님,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인터뷰. 태린-준희, 서현, 하나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보육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들 중 하나가 바로 ‘키즈 카페’이다. 대부분의 키즈 카페는 전문 보육교사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 그리고 이 일종의 보육노동을 수행하는 것은 대부분 20대 여성들이다. 여섯 번째 소란의 주인공들은 키즈 카페에서 일한 공통 경험을 지니고 있는 서현, 준희, 하나.



- 안녕 얘들아. 어쩌다 보니까 너네 세 명이 다 키즈카페 알바 경험이 있더라고. 그래서 너네랑 다 같이 얘기를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하게 됐어. 응해 줘서 고맙고.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해.


준희 : 안녕하세요, 저는 준희라고 합니다. 나는 사실 너무 짧게 일하긴 했어. 한 2주 정도. 일도 잘 안 맞았고 사장님이 너무 별로여서.


서현 : 안녕하세요, 저는 서현입니다. 음.. 나는 블록키즈카페에서 1년 넘게 일했어. 그런데 그만두고 나서도 대타를 자주 해서 총 1년 반 정도 일한 것 같아.


하나 : 저는 하나라고 합니다. 나는 블록키즈카페 두 군데에서 2년 반동안 일을 했어. 집에서 용돈을 안 받아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좀 오래 했지. 



- 주로 어떤 일들을 했어?


서현 : 좀 알바를 많이 했었어서… 다른 일들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라고 생각했어. 집 근처기도 했고, 일하다 보니 재밌기도 했고. 주로 카운터에서 안내해 드리고, 계산하고, 그리고 아이들이 블록 조립하는 걸 도와주고, 기본적인 청소 정도 했던 것 같아. 오픈은 혼자 하고, 낮에 아르바이트생이 한 명 더 오고, 바쁜 날에는 사장님이 오시기도 했고.


준희 : 내가 일했던 곳은 점핑클럽이었어. 트램펄린 위에 올라가서 청소기 돌리고, 슬라임 카페도 겸해서 슬라임 만들기 도와주고… 설거지를 많이 해야 해서 힘들었지. 초등학생이랑 중학생들이 많이 오는 편이었어. 


하나 : 카운터에서 등록하고, 안내하고, 계산하는 일을 했고. 주로 레고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레고 조립하는 것을 도와줬어. 그리고 마감이나 오픈할 때 청소 하고… 오는 아이들은 주로 미취학 아동이고 15살까지 연령제한이 있었어.



- 기억나는 에피소드 있으면 말해줄래?


준희 : 처음부터 좀 빡치는 에피소드이긴 한데. 사장님이랑 있었을 때였어. 무슨 과인지 물어보시더라고. 간호학과라고 하니까, 갑자기 자기는 예쁜 여자 간호사가 주사 놔 주는 게 좋다. 못생긴 간호사가 놔 주는 건 싫더라. 더 아픈 것 같더라. 너도 잘생긴 남자가 놔주는 게 더 좋지 않냐.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 진짜 너무 기분이 나빴어. 


하나 : 많은 아이들을 나 혼자서 케어해야 했거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사장님께 사람을 더 뽑거나, 아니면 남자 알바생을 뽑으면 안되냐고 건의를 했었어. 근데 사장님이 애는 여자가 봐야지, 남자가 보면 안 된다. 이러시는 거야. 어이가 없었어. 애 보는데 성별이 뭐가 필요해? 


서현 : 나는 기분나빴던 건 아니고 그냥 진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성인 분들이 들어오셨던적이 있거든. 먼저 전화를 주셔서 혹시 들어가는 데 나이 제한이 있냐고 물어보셨어. 레고 만들어보고 싶은데 입장 가능하냐고. 사실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사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입장을 도와드렸었지. 두 분이셨는데 진짜 열심히 레고만 만들고 가셔서 기억에 남아.ㅋㅋㅋ 


준희 : 나는 좀 빡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일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담배 피냐고 물어보시더라고? 그래서 나는 비흡연자라서 안 핀다고 했지. 그러니까 다른 알바생들 보고, 담배 피는 애들 담배피러 가자! 이러면서 다 데리고 나가는 거야. 아니 무슨… 일하는 중에 갑자기 담배를 피러 가냐고. 그래서 원래 세 명이 일하는데 나 혼자 남아서 걔네 올 때까지 혼자서 일을 다 했지. 그리고 돌아오고 나서 사장이, 나는 알바생들이 빡세게 일하는 거 싫더라~ 편하게 해~ 이러더라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일은 무슨 지만 편하게 하겠지… 



- 그럼 이제 좀 재밌었거나 뿌듯했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보자.


준희 : 애기들이 귀여워서 재밌었던 때도 있어. 어느 날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앞에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이 앉아 있더라고. 그래서 말을 걸었어. 오전부터 와 있던데, 뭐 하고 있어? 이랬더니 언니랑 놀려구요! 이렇게 답을 하더라구. 너무 귀여워서 같이 놀았는데, 자기가 유튜버래. 구독자 몇 명이냐고 물어봤더니 열 두 명이래ㅋㅋㅋ 거기서 뭐하냐니까 자기는 그림을 그린대. 너무 귀여웠어. 


하나 : 나도 훈훈한 이야기 있어. **월드(하나, 준희, 서현이 거주하는 곳에 위치한 놀이공원) 정문에 코코몽 동상 있잖아. 어린이날 전날이었는데, 어떤 아이한테 “XX이는 내일 뭐 해?”이렇게 물어봤는데 “코코몽 나라에 가요!” 이러는 거야.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 했거든. 근데 생각해 보니까 **월드에 간다는 뜻이더라고. 너무 귀여웠어 진짜.


준희 : 근데 나 또 빡치는 썰 있어… 남자애들이 보통 힘이 좋잖아. 그래서 슬라임 풀 젓기 이런 단순한 걸 시켜. 나는 이제 그거 뒤처리하고, 잡다한 일들 다 하는 거지. 슬라임 풀이 진짜 안 떨어지거든. 그거 설거지를 다 시켜. 진짜 어이 없는 건, 내가 그것만 하면 뭐 이해를 해. 근데 다른 남자 알바생들이 슬라임 젓기만 하고 있으니까, 나는 봉봉 타는 애들 시간 체크도 해야 하고, 음료수 만들어야 하고, 라면 끓이고, 청소도 해야 하고, 카운터 계산도 해야 되고… 아니 그럼 설거지 같은 건 슬라임 만들러 간 남자애 둘 중 하나가 해도 되는 거잖아. 진짜 아무것도 안 해. 남자 알바 중 하나는 사장님이 운영하던 전 가게에서부터 친했던 사이래. 그래서 시급 만 원 받더라고. 근데 그냥 폰이나 만지고 있고 나는 최저 받는데 쉴 새 없이 일하고. 



- 그럼 시급 얘기가 나왔으니까, 임금 얘기로 넘어가 볼까? 다들 얼마 받고 일했어? 근로계약서는 썼고?


준희 : 근로계약서는 안 써봤어. 사장이 말을 안 꺼내더라고. 시급은 7천 5백원이었나, 그러니까 그 때 당시 최저시급. 최저가 어디냐, 이렇게 생각하고 일했지. 


하나 : 나도 근로계약서 안 썼어. 첫 번째 직장은 최저시급이었고, 두 번째 직장은 7천원 받고 일했어. 최저보다 덜 줬던 거지.


준희 : 갑자기 생각난 또 빡치는 이야기… 사장님이 자꾸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는 거야. 없다고 하니까, 왜 없냐고.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 남자 알바생들은 어떠냐고 물어보고. 너무 곤란했지. 아니 내가 일하러 갔지 소개팅 하러 갔어? 그래서 너무 짜증나서 말대답을 좀 했지. 그랬더니 무슨 애가 말대꾸를 자꾸 하냐고. 아니, 안 하게 생겼냐고.


서현 : 나도 최저시급. 근데 그거에 대해 별 생각은 없었어. 일단 최저라도 주니까. 최저 안 주는 데도 되게 많아가지고. 근데 기본적으로 내가 맡은 일보다 더 많은 걸 할 때가 많았거든. 그럴 때는 아.. 좀 더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 근무 중에 화장실을 혼자서 못 가는 아이들이 있어서 데리고 갈 때가 있었어. 혼자 해결을 못하는 친구들은 도와 주기도 했고. 어느 날은 가끔씩 오는 4살인가 5살 정도 되는 친구가 있었어. 갑자기 그 친구 주변에서 냄새가 나는 거야.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바지에 실례를 했던 거야. 너무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일단 화장실로 데려갔지. 그래서 아이가 실례한 옷들을 정리하고 혼자 뒷정리를 해 줬고. 정리하느라 퇴근 시간도 지나 버리고… 나중에 사장님이 빨리 퇴근하라고 하셔서 퇴근을 했고, 부모님이 사장님께 고맙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 아이가 실수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일단 보육교사가 아닌데 그런 부분까지 일을 다 하게 되는 점이 좀 그랬지. 돈은 추가로 못 받고.


준희 : 사장님은 나한테 너네는 꿀 빠는 거다 그랬는데 나는 솔직히 더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나 : 첫번째 직장은 최저시급을 줬지만 솔직히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전문 보육교사가 아니지만 여러 부모님들이 내가 보육교사인 줄 알고 기본 업무 말고도 여러가지 일들을 부탁해서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거든. 두번째 직장은 최저시급보다 더 적은 돈을 받았는데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해. 사장님이 다른 곳보다 일이 쉽고, 매장이 협소해서 최저시급보다 더 적게 준다고 했었거든. 근데 다 개소리였어. 매장이 좁지만 아이들이 빠른 시간에 채워지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하지만 다른 알바를 구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이미 일이 익숙해져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일했지만 그냥 참고 일했던 것 같아.



- 말하다 보니까 계속 화나는 얘기들을 하게 되네. 또 다른 에피소드 있어?


하나 : 초등학교 남자애들 여러 명이서 온 적이 있었어. 두번째 직장에서는 간식 반입 불가였거든. 근데 한 친구 아버님이 나한테 너무 무섭게 말해서…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그냥 먹어도 된다고 한 적이 있어. 그 후에는 그 친구들이 간식을 먹고 쓰레기를 안 치우는 거야. 그래서 내가 자기가 먹은 쓰레기를 치워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걔네가 나보고 ‘이런 건 일하는 사람이 치워야 하는 거 아니냐, 돈 받고 일하면서 이런 것도 안 하냐’ 이렇게 말해서 순간 너무 당황한 경험이 있어. 또 내가 시험기간이라서 그 전날 공부한다고 밤을 새서 화장을 못 하고 간 적이 있었거든. 그 날은 오픈 담당이었는데, 원래 사장님이 일찍 안 오셨는데 그날은 일찍 오신 거야. 근데 화장 안 한 내 얼굴을 보시더니 여자는 화장을 해야 생기가 있어 보인다, 화장을 안 하고 마스크 쓰고 오니까 별로 보기가 좋지 않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급하게 틴트 바르고…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어도 이런 말을 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 


서현 : 아이들한테서도 상처를 많이 받았지… 착하고 예의 바른 친구들도 많았지만 우리 같은 알바생이 ‘을’ 의 입장이란 걸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어. 그래서 “이건 쌤들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이거 치워요” 이런 말을 하기도 해서 좀 당황스러웠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아이에게 심한 욕을 들었던 적도 있어. 아이들을 제재하고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을 해야 했어. 근데 그 아이는 그걸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심한 욕을 하고 나가 버린거야. 그때 정말 놀라고 당황스러웠지.


준희 : 일이 좀 힘들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괜찮으면 버틸 만 한데, 그게 아니면 진짜 너무 힘들지. 물론 일이 편하면 더 좋겠지만. 그리고 일하다가 사장님이 일손이 부족하다고 나를 데려간 적이 있어. 나는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랐거든. 그래서 어머님이 “이건 왜 그런 거에요?” 라고 물어보시는데 잘 몰라가지고 아… 이렇게 있었는데 사장님이 와서 정강이를 까는 거야. 저리 가라면서.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지. 


하나 : 일단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너무 대단한 것 같아. 나는 그냥 알바로만 일한 거였는데 그분들은 직업으로 하시는 거잖아. 일하는 거에 비해서 대우가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일 하면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뒤늦게 깨달았고, 내가 저 나이 때는 어땠지? 하고 나를 다시 되돌아 보게 되더라고.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


준희 : 사장님.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아 나 너무 자세하게 말한 것 같아서 좀 무섭네.


하나 : 나는 나를 무시했던 부모님들께 한 마디 하고 싶어. 자기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입니다. 저도 우리집에서 공주님으로 불린답니다. 


서현 : 사실 우리가 일했던 곳은 키즈카페잖아. 근데 방문해 주시는 학부모님들은 우리에게 보육교사 같은 정도의 케어를 바라셨던 것 같아. 물론 아이들 다 소중하지. 근데 우리는 한 명이 약 20명 이상의 아이를 돌봐야 했단 말이야. 현실적으로 아이 하나하나 신경 쓰는 건 불가능한 거잖아. 혹시나 아이에게 작은 상처가 생기거나 사소한 다툼이 생겨도 그 시간대에 있었던 우리 알바생들 잘못으로 돌아온 경우도 많고. 정말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 분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어. 그리고 보육교사만큼의 케어를 바라시면서 동시에 알바생이라고 얕잡아 보시는 분들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싶기도 했었고. 이런 분들에게 당신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노력하는 알바생들을 조금이나마 존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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