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 Sep 03. 2020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일곱 번째 소란

거기서 풍겨오는 화장품 냄새만 맡아도 역한 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글쓴이. 미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일을 그만둔 지 꽤 오래됐지만 문장 특유의 음가가 머리에서 사라지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몇 년 전 드럭 스토어에서 4개월 정도 일했다. 스탭이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많이 가기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했고, 좋아하는 곳에서 일하면 더 즐겁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지원했다. 다른 일에 비해 시급도 더 줬다. 심지어 대기업 직영의 드럭스토어는 ‘웬만하면 안 주는’ 주휴수당이나 추가 수당, 야간수당도 빠짐없이 준다고 했다. 맘만 먹으면 발휘할 수 있는 외향적인 성격을 제대로 활용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드럭 스토어의 스탭은 평소에는 멍하니 서있다가 필요한 제품을 꺼내 줄 때만 달려오는 줄 알았던 게 큰 오산이었다. 싹싹한 성격을 강조한 탓인지 면접 끝에 금방 취직했다. 역시 그곳에선 돈을 쓸 때만 즐겁고 노동해서 돈을 벌 때는 무지하게 힘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뒤에서의 일이 수 십 수 백 가지는 있었다.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미소 지어야 하는 어린 여성 스탭을 무시하는 고객의 파도 속에서 웃는 바위처럼 버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취직 일주일 만에 모두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몸을 써서 힘을 들이는 노동은 참을 만했다. 물류 박스가 들어오면 큰 플라스틱 박스에 꽉 채워 담긴 제품들을 정리하고, 행사에 맞춰 매장 전체 진열 제품을 바꾸고, 자잘하게는 청소하고 포장했다. 크고 작은 일들은 쓰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고정 업무는 어딜 가나 있으니 체력적으로 힘들었어도 견딜 수 있었다. 


 입사일부터 퇴사일까지 시달렸던 건 당연히 감정노동이다. 입사 교육부터 대기업의 그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웃을 것을 강조했다. 화장품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고객들은 젊고 어리고 밝은 여성 스태프들로부터 향기로운 태도로 대접받길 원했다. 교육장에선 이제 막 스탭이 된 우리에게 다양한 서비스 관련 민원의 사례를 보여줬다. 하루 만에 무수리 세계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객들은 입퇴장과 동시에 깍듯이 인사받고 싶어 했다. 문에는 종이 달려있었고 종이 울리자마자 득달같이 인사하지 않으면 일부 고객들이 고객을 고객답게 대접하지 않는다고 홈페이지에 민원 글을 쓴다고 했다. 


 나는 청소를 하든, 계산을 하든, 포장을 하든,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인사해야 했다. 고객과 대화를 할 때는 톤이 낮아서도 지쳐 보여서도 안됐다. 무조건 c장조의 ‘라’ 음을 유지해야 했는데 톤이 낮으면 직원이 일하기 싫어 보인다고 민원이 들어온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에서 낮은음을 가진 목소리의 나는 여섯 계단 정도 높인 목소리로 일했다. 별로 반갑지 않아도 반갑다고 감사하지 않아도 감사하다고 소리 높여 세상에서 가장 기쁜 목소리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냥한 인사까지도 돈으로 지불했다고 여기는지 대답을 해주진 않았다.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하루 종일 톤을 높였던 성대가 정신을 못 차렸다. 


 환불과 관련해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 분명히 안내할 때 유의 사항에 관한 설명을 모두 했지만 못 들었다고 시치미 떼며 사용하고 다시 가져와서 막무가내로 환불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입사 교육 때 그런 사례가 있다고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던 일이 눈 앞에서는 실화였다. 나이 많은 남성 직원이 여기 스탭이어도 저럴까? 이 질문을 되뇌고 되뇌었다. ‘젊고 어리고 밝은’ 여성 스탭은 그들에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종이 인형처럼 조종할 수 있는 만만한 존재였다. 그걸 빌미 삼아 ‘너는 나이도 어린 게 부모한테 그렇게 배워 먹어서 이런 데서 알바하며 나를 무시하냐’ 비열하게 폭언하는 고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잘한 무시에서부터 비아냥 거리는 말들, 가끔 들었던 폭언 등 이제는 웬만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달라’고 했더니 ‘그럼 이리 와봐!’ 크게 불렀던 고객은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반말은 자주 들어서 하나도 놀라울 게 없었지만 그날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많이 놀랐었다. 그래도 나는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게 클립으로 고정된 인형처럼 웃는 얼굴로 다가갔다. 손등에는 십 여개의 립스틱이 발색되어 있었는데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색을 골라달라는 요청이었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고객은 나의 모든 제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색상을 추천했을 때 그 고객은 나의 어린 나이를 트집 잡고 폭언을 했다. ‘무수리’ 세계관에 익숙해졌는지 크게 슬프지는 않았다. 자존감을 갉아먹는 그곳의 화장품 냄새에도 적응했던 것 같다. 어쩌다 피곤해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날에는 점장이 나의 생기 없는 입술색을 지적했다. ‘ㅇㅇ씨, 입술 좀 바르지?’ 


 여기까지 쓰니까 일에 질려 4개월 만에 퇴사한 전 직원이 푸념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지 다소 걱정이 된다. 슬프게도 못다 쓴 것들이 많지, 과장한 건 없다. 서비스직 경력도 별로 없던 내가 빠른 시일 안에 취직한 건 우리 매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잠수 타거나 퇴사하는 직원이 많아서였다. 일하는 4개월 동안 이틀 출근하고 사라지는 스태프들을 많이 봤다. 나도 봄에 시작해 여름이 끝날 무렵 퇴사했다. 그 이후 한동안 드럭 스토어 앞을 지나가면 거기서 풍겨오는 화장품 냄새만 맡아도 역한 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